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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분석

폭력시비 논란에서 풍자·해학 가득한 퍼포먼스까지

연말을 떠들썩하게 했던 민중총궐기 현장



[최종윤 기자 조 운 기자 김윤선 기자] 지난해 연말은 그 어느 해보다 시끄러웠다. 19대 국회의 회기 종료와 내년 총선을 앞둔 정치권은 말할 것도 없고, 각종 개혁 쟁점법안·한중FTA 등은 갈등의 도화선이 됐으며 이 때문에 거리로 뛰어나온 사람들은 저마다 목소리를 높였다. 아직 진행 중인 사안도 수두룩하다. 무엇보다 민중총궐기라는 이름 아래 집회·시위·문화제·총파업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열렸다. 과거로 돌아간 듯한 경찰과 시위대간의 대치상황도 벌어졌지만 총궐기가 계속되면서 풍자·해학이 가득한 퍼포먼스도 보이는 등 짧은 기간임에도 집회문화의 변화가 보이는 지점이기도 했다. M이코노미가 2015년 민중총궐기 현장을 기록에 남긴다.


광화문 일대 한밤의 아수라장, 제1차 민중총궐기 집회


지난해 11월14일 서울 시청, 광화문 일대에는 민주노총,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53개 단체가 노동개혁 반대,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등을 내걸고 ‘민중총궐기 집회’에 나섰다. 이때만 해도 민중총궐기가 한 달여 동안 지속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드물었다. 노동·농민·청년·학생·장애인들이 모두 나서면서 경찰 추산 6만여 명이 이번 집회에 참가했다.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이후 7년 만에 가장 큰 규모다. 당초 광화문광장을 중심으로 평화행진을 예고했으나 시위대가 청와대 방향으로의 진출을 시도하면서 이를 막아선 경찰과 시위대 간 강한 충돌이 일어났다. 마치 과거 영상을 틀어놓은 듯한 모습이 2015년 겨울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졌다.


어디선가 갑자기 등장한 쇠파이프는 경찰버스의 유리창을 깨부수고 버스는 밧줄에 묶여 끌려 나왔다. 저지선을 뚫으려는 시위대에 경찰은 캡사이신을 섞은 물대포를 발사하며 맞섰다. 물대포를 맞은 백남기(69, 전농회 회원) 씨는 중태에 빠져 현재까지도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백남기 씨가 입원한 서울대병원은 이어진 2차, 3차 총궐기 행진의 최종 목적지가 됐다.


시위참가자, 경찰 등 30여 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밤중에는 횃불까지 등장하면서 그야말로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수십 명이 경찰에 연행된 것을 알려져 있으며 이에는 고등학생도 포함돼 있다. 이후 ‘1차 민중총궐기 집회’는 모인 이유는 사라지고 폭력만이 강하게 조명 돼버렸다. 한편 시민들은 광화문을 중심으로 늦은 밤까지 시위가 진행되면서 지하철역 출입구가 통제돼 큰 불편을 겪었다.


해외 외신도 이 같은 폭력현장을 보도하며 관심을 보였다. 폭력시비가 불거진 1차 총궐기 이후 경찰은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을 체포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으며, 1급 수배자가 된 한상균 위원장이 조계사로 피신하면서 또 다른 논쟁으로 번져갔다. 이에 12월9일 경찰은 13년 만에 조계사 관음전 강제 진입을 시도했고, 이를 막아서는 민주노총 조합원, 조계사 종무원, 신도들이 부딪치면서 조계사에서는 비명·탄식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체포직전 조계사에서 중재를 시도했고, 결국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은 다음날인 10일 11시께 자진해서 조계사에서 걸어 나왔고, 경찰은 한 위원장을 바로 검거해 경찰서로 이동했다.


관심 쏠린 2차 민중총궐기, 복면풍자·퍼포먼스까지


2차 민중총궐기대회는 지난해 12월5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실시됐다. 이날 시위에는 중·고등학생, 대학생 총학생회,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금속노조, 전교조, 시민사회·노동·농민단체 회원 등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다. 모인 인원은 주최측 추산 4만명, 경찰추산 1만5000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11월14일 있었던 민중총궐기대회가 불법 폭력시위와 경찰의 과잉진압 논란에 휩싸인 이후 박근혜 대통령의 “복면 시위대는 IS와 같다”는 발언과 경찰의 사전 불허로 한때 2차 대회가 불투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주최 측은 평화 시위를 약속하고 2차 민중총궐기대회는 예정대로 진행됐다. 이날 시위는 오후 3시께부터 시민들의 안전한 시위를 위한 경찰의 차도 진입차단과 함께 진행됐다. 시청 앞 광장은 공사로 인해 한쪽 면만 집회로 사용이 가능했고, 몰려든 수많은 사람으로 주최 측은 차로를 열어 달라고 요구했다. 경찰도 바로 수용해 막고 있던 차로를 열어줬다. 당시 이목이 집중됐던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영상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정의당 의원들은 시민들과 함께 직접 시위에 참여했으며 새정치민주연합은 시위대의 행진 노선에 줄지어 서서 평화로운 시위를 독려했다. 폭력시비가 불거진 1차 시위 때문인지 온 국민의 관심은 2차 시위로 집중됐고, 현장에는 세계 각국의 외신기자들도 눈에 띄었다. 민중총궐기라는 이름에 걸맞게 시위에는 세월호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중·고등학생부터 예술의 검열을 반대하는 예술계인들,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목소리에 이어 ‘박근혜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까지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시민들이 모여 들었다.


문화연대 내 예술가들은 현 정권의 예술 검열에 반대하는 퍼포먼스와 오브제 전시를 진행했다. 그들은 앞서 만민공동회를 통해 현 정권의 예술 검열 23건의 사례를 알렸으며 이러한 예술 검열은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시위에는 10대 청소년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고3인 한 여고생은 “소통을 위한 자리이기에 우리 청소년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나왔다”고 말하며 이러한 집회 문화에 대해 “민주주의 국가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이러한 자리에 친구들과 함께해 즐겁다”고 밝혔다.


이날 청소년들은 세월호 관련 피켓을 들고 삼삼오오 모여 다니며 시위참여자들과 사진 촬영도 하며 평화로운 분위기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이날 이목을 끈 것은 복면 대신 다양한 가면을 쓴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시위 현장에는 가면을 파는 사람도 등장했다. 어리둥절한 외국인들도 여기저기 사진을 찍으며 참여했다.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에 온 지 10년이라는 제프는 오늘 무슨 일로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모였는지 물었고, 상황설명을 해주자 고개를 끄덕였다. 시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자 제프는 “인도네시아에서도 수많은 시위와 집회를 한다”면서 “불만의 목소리를 내려면 어쩔 수 없지 않냐”고 말했다. 시위현장에서 폭력성은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는 인도네시아의 시위는 평화로운 편이라고 말했다.


시위는 5시 무렵부터 시청 앞 광장을 출발해 종각을 지나 1차 민중총궐기대회에서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정신을 잃었던 백남기(69) 씨가 입원해 있는 서울대병원까지 행진을 실시했다. 시위는 폭력의 조짐 없이 평화롭게 진행되었다. 중간에 예정된 차선을 넘었지만 이내 대열을 정비하는 모습을 보이며 큰 대치 없이 서울대병원 앞으로 결집해 이내 귀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3차 민중총궐기 ‘소요문화제’, 탬버린·캐스터네츠·부부젤라 등장


3차 민중총궐기는 1차 집회에서의 폭력시비의 주요 쟁점 가운데 하나였던 광화문광장에서 진행됐다. 광화문광장은 집회가 금지되는 장소인 만큼 주최측은 19일 15시 문화제로 신고해 서울시의 허가를 받았다. 주최 측인 민주노총은 “3차 총궐기는 대회 참가방식에 상징성을 도입했다”며 “2차 총궐기가 가면으로 저항의 상징성을 표현했다면, 3차 대회는 공안탄압에 열을 올리는 공안당국의 ‘소요죄 적용’에 저항하는 의미로 ‘소요문화제’로 정했다”고 밝혔다.


구속된 한상균 위원장에 경찰이 1986년 이후 29년 만에 ‘소요죄’ 혐의를 적용하자 이를 풍자한 것이다. ‘소요문화제’란 소란스럽고 요란한 문화제를 뜻하는 것으로, 참가자들은 각자 ‘소란스럽게 소리 나는 물품’과 ‘요란하게 보이는 가면이나 복장’으로 참여하자는 취지다. 실제 광화문 광장은 탬버린·손바닥 모양의 캐스터네츠·부부젤라 등을 들고 나온 사람들로 가득 찼다. 공연도 문화제 형식을 띠며 대학생들의 탬버린 공연, 거문고를 이용한 각종 공연이 이어졌다.


또 민주노총, 전농, 민주노련 등 단체의 정부의 노동법 개정 저지와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의 석방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한편 문화제 한 켠에 청년예술가모임의 퍼포먼스도 눈에 띄었다. 한복을 차려 입은 4명의 여학생들은 ‘세상에 안 좋은 기운이 가득하다’며 굿판을 벌였다. 금세 사람들은 모여 들었고, 흥이 돋자 자진해 굿판에 뛰어든 시민도 있었다. 퍼포먼스를 펼친 한 참가자는 “이번에 소란스럽고 요란스럽게 목소리를 내는 문화제라고 해서 이렇게 한복을 입고 참가하게 됐다”면서 “앞으로도 시민들도 함께 참여할 수 있게 다양한 퍼포먼스로 재미있게 구상해서 많이 알리고 뜻을 전하고 싶다”고 전했다.



문화제를 마친 사람들은 청계광장으로 이동한 뒤 청계광장에서 대학로까지 행진했다. 광화문광장에서 청계광장까지는 경찰이 행진 불허를 통보해 참가인원들은 도로로는 나가지 못하고 인도와 횡단보도를 건너 청계광장까지 이동했다. 참가자들은 충돌 없이 행진을 마쳤다. 하지만 경찰은 이날 행진이 끝난 직후 형식만 문화제였지 사실상 미신고 불법집회였다며 주최측을 형사 처벌 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주최 측은 “소요문화제가 개최된 맥락을 봐야한다”며 “소요문화제는 민주주의 문화제”라고 밝혔다.



‘취재後’ -최종윤 기자-


‘우리’가 되지 못하는 ‘그들’ … 시민들의 공감대 끌기 부족해

1시 아니면 3시에 서울역광장 아니면 서울시청앞 광장에 모인다. 모여서 다 같이 구호를 외친다. 발언대 형식으로 잇달아 발언의 시간을 가지고 문선이나 노래가 이어진다. 가끔 영상상영도 한다. 2시간 정도 후에 다 같이 행진을 시작한다. 지난 3년간 다녀본 시위·집회의 현장에서 반복된 일이다. 현장에서는 ‘투쟁’ 소리만 반복해서 크게 들릴 뿐 무엇 때문에 하는지는 멀리서는 알 수가 없다. 머리에는 붉은 띠를 두르고 얼굴에는 비장함까지 느껴진다. 시민들은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빠르게 그 자리를 지나가 버린다. 여전히 ‘우리’가 아니라 ‘그들’이 되는 순간이다.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으니 가까이 가기 꺼려지고, 목이 터져라 외치는 소리는 소음으로 느껴진다.


한 시민은 “가장 높게 든 깃발이 노조의 깃발이 아니라 왜 하는지 적어서 들고 다니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시위를 보면서 느끼는 가장 큰 문제는 단위 사업장노조에서 하는 시위와 민주노총이 직접 주최하는 시위의 특별히 다른 점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장을 취재하면서 느낀 거라곤 모인 인원의 규모와 틀어주는 영상의 퀼리티만 다를 뿐이다. 민주노총은 단위 사업장 노조가 아니기 때문에 노동계를 대변해 일반 시민들의 공감대도 이끌어야 한다. 그나마 이번 한 달여 간 순차적으로 지속된 민중총궐기는 변화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2차 총궐기에서는 가면을 파는 사람도 등장했고, 자발적으로 가면을 쓰고 참가한 사람들로 많았다. 예술가단체들은 다양한 작품을 전시하기도 했고, 깃발을 긴 비닐로 만들어 바람에 흩날리는 소리만으로 지나가는 사람의 시선과 발걸음을 잡아끌었다. 문화제 형식을 띤 3차 총궐기는 어땠을까? 주최 측의 공연 일변도의 행사장 아래, 20대 중후반 여성 4명이 펼친 굿판에는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예 흥에 겨운 시민들이 춤판에 끼어들기도 했다. 누가 이끈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이다.



현재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에는 민주노총 금속노조 콜트악기 지회의 노동자들이 김무성 대표의 사과를 요구하며 문제해결을 위한 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화요일, 금요일 저녁이면 문화제를 열어 퇴근하는 사람들의 관심을 모은다. 가요제를 벌이고, 팟케스트 방송도 진행한다. 시민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참여를 자연스럽게 이끌기 위해 노력한다. 어떻게 보면 콜트악기 지회와 민주노총의 역할이 바뀐 것만 같다. 민주노총은 폭력집단, 한상균위원장은 범법자가 됐다. 시위·집회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당연하다. 그러나 폭력은 안 된다.


한 겨울 추위에 떨며 시위를 펼치는 노동자들이 박수 받지 못하고 전 국민적 공감을 이끌어 내지 못하고 있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개그콘서트의 개그맨들이 하는 정치·사회풍자가 단 몇 마디에 시청자들의 박수를 받는 것은 공감을 주기 때문이다. 이제는 노동계도 즐겁고 편하게 시민들을 만나고 그들의 마음을 끌어들이는 공감대를 만들어야 한다. 폭력적인 행동으로 반감을 살 게 아니라 즐거움·재미·볼거리를 가미한 풍자와 해학으로 노동계를 알려나가면서 시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판을 벌여야만 한다.


MeCONOMY Magazine January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