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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미국 최초 미네소타 주에서 열린 북한 난민 미국 내 정착 위한 심포지엄

'미국이 앞장 서서 북한 난민 보듬어야'


유럽 각국은 물론 남미국가들까지 대규모 난민 위기를 맞아 대책 마련에 한창이다. 전 세계 미디어들이 난민들의 비참한 행렬을 연이어 보도하고 있다. 독일 메츠켈 총리는 지난 8월24일 시리아 출신난민을 모두 받아들이겠다는 특단의 조치를 발표하기도 했다.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한 탈북자들은 어떨까. 중국 길림성 지역으로 북한을 탈출할 수밖에 없는 탈북자들에 대해 중국은 난민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공안에게 잡히면 다시 되돌려 보내 지기 때문에 탈북자들은 중국이라는 거대한 땅을 또다시 넘어야 한다. 10월19일 미국 최초로 미네소타 주에서 북한 난민들의 미국 내 정착을 위한 대대적인 심포지엄이 열렸다. 참가자들은 이날을 ‘북한 난민 인권의 날’로 선포하는 등 탈북자들의 미국 내 정착을 위한 실질적 대책 마련을 위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북한 난민 자유수호를 위한 미국 미네소타 위원회’(이하 위원회)가 10월19일 미네소타주립대 험프리 대강당에서 북한 난민들의 미국 내 정착을 위한 대대적인 심포지엄을 가졌다. 심포지엄은 오전 8시부터 저녁 7시까지 진행됐다. 심포지엄에 앞서 참가자들은 이날을 ‘북한 난민 인권의 날’로 지정하고 선포식을 가졌다. 열악한 탈북자들의 인권 상황에 대해 알리고 이들에 대한 미국 내 정착을 위한 실질적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한미 양쪽 인사 100여 명이 모여 눈물과 감동 그리고 희망으로 가득 찬 열띤 토론이 이루어졌다.


심포지엄은 탈북자들의 현실을 알리기 위한 한국인 전문가들이 참석해 각 분야별로 토론을 진행했다. 연극인인 김진호 남북문화교류협력위원회 위원장이 ‘남북한 문화교류의 시각에서 살펴본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통일’, 김창수 박사(코리아재단 연구원장)가 ‘한반도 분단의 역사적 배경과 평화통일의 방향’, 이상훈 교수(동아방송예술대학, 영화감독)가‘탈북자의 한국 정착상황과 바람직한 탈북자 정착정책’, 주찬양(24, 서울거주 탈북여성) 씨가 ‘2010년 탈북 스토리’, 장희정 작가가 ‘내가 만난 탈북자들’에 대해 발제를 맡았다. 이번 심포지엄을 기획한 김 현 위원장(70, 여)과 전 미국 국무부차관을 지낸 에릭 슈워츠(현 오바마 대통령 인권특사, 미네소타 주립대 험프리 행정대학원장), 마크 데이튼 주지사, 샌디 패퍼스 상원의원 등 미네소타 주 주요 인사들이상당수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주찬양, 중국 관통해 태국까지 걸어가


미국 국무부의 난민재정착 프로그램(USRAP)에 따르면 미국의 난민수용수는 연간 7만여 명에 달한다. 북한출신 난민의 경우 지난 2004년 제정된 북한인권법에 의거, 2006년 9명을 처음 받아들인 이래 2013년까지 186명이 정착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토록 미국 내 북한 난민의 수가 적은 이유는 바로 정치적 문제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북한을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북한과의 관계를 이유로 중국 정부는 탈북자의 경우 난민 대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북한으로 돌려보내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2000년 중국 당국이 UNHCR(유엔난민기구)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북한 난민 7명을 다시 북한으로 강제소환한 경우가 있었다. 경제적 이유는 난민의 조건에 해당되지 않지만 당시 UNHCR은 “경제적인 이유로 국경을 넘은 사람도 자국으로 돌아갈 경우에 박해의 위험이 있다면 난민으로 봐야 한다”며 중국당국에 인도적 처리를 촉구했지만 중국은 탈북자를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중국으로 도망친 북한 난민들은 ‘난민’이 아니라 불법적으로 국경을 넘은 범죄자가 되어 중국 공안을 피해 지하로 숨을 수밖에 없다. 북한에서 죽을 각오를 하고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탈북한 탈북자들은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를 또다시 탈출해야만 한다.



A채널 ‘이제 만나러 갑니다’를 통해 한국에서도 유명해진 탈북자 주찬양 씨는 이날 본인의 탈북 스토리를 전해 좌중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주 씨는 중국 공안에게 잡히지 않으려고 목숨을 걸고 중국을 관통해 걸어서 태국 국경을 넘었다. 그리고 태국에서 감옥 생활을 겪은 후 힘들게 한국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실제로 중국에는 약 25만명의 탈북자들이 현재도 중국 지하에 숨어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살아가고 있다는 게 그녀의 얘기다.


탈북민, 한국에서의 적응도 힘들어


심포지엄에 참석해 발제를 맡은 이상훈 교수는 그렇게 힘들게 돌고 돌아 우리나라에 들어 온 탈북자들이 한국에서 적응을 하지 못해 어려운 현실에 대해서 지적했다. 이 교수는 탈북자들의 높은 자살률을 언급하며 “같은 대한민국 사람들이 탈북자에게 가하는 폭력과도 같은 차별과 괄시가 이들을 더욱 힘들게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동·서독의 통일 사례를 언급하며 “통일이 되기 전 서독은 동독 탈북자들을 위해 4~5년 정도 장기적인 플랜을 가지고 서독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교육과 복지에 도움을 주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한국은 3달간의 하나원 생활과 몇 푼의 정착금이 전부”라고 비판하며 “얼마 안 되는 정착금마
저도 탈북을 도와준 브로커에게 줘야 하기 때문에 탈북자들은 빈털터리로 한국 생활과 맞닥뜨리게 되고 결국 일용직을 떠도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전했다.


 이어 이 교수는 “한국인으로서 참으로 부끄럽다”고 덧붙였다. 더불어 “상황이 이렇다 보니 탈북자들 중 가능하다면 미국에서 새 삶을 시작하고 싶다고 말하는 이들이 매우 많다”고 말하며 “우리나라가 적극적으로 탈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면 좋겠지만 선진적인 미국이 먼저 앞장선다면 다른 나라도, 우리나라도 함께 따를 수 있을 것”이라며 이번 심포지엄이 실질적 결실을 맺을 수 있기를 소망했다.


미국에서 먼저 북한난민들을 보듬어야


이번 심포지엄을 기획한 김현 위원장은 서울출신으로 6.25 전쟁 당시 월북한 가족들과 생이별해 이모의 슬하에서 자랐다. 그 뒤로 여군에 입대해 미 8군 헌병대를 거쳐 32세에 미국 미네소타로 이민했다. 건설 관련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미국 의회가 인준하는 미네소타 주립대 동양인 최초의 평의원을 역임했으며 YWCA 상임이사·무역협회 상임이사를 두루 거쳤다.


김 위원장은 “우연히 한국의 ‘이제 만나러 갑니다’ 프로그램을 보고 탈북자들의 인권사항을 전해 듣고 감화를 받아 탈북자들의 문제를 세상에 알리기로 결심했다”며 “미네소타 주에 정착하고 있는 난민의 경우 소말리아 국적 8만여 명, 라오스 몽족은 13만여 명에 달하는데 북한은 1명도 없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 실제로 베트남 전쟁 때 미국을 도와 전쟁에 참여했던 몽족은 베트남과 라오스 등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던 소수민족이었으나 전쟁이 끝나고 공산정권의 표적이 되어 자신들의 근거지를 빼앗겨 난민이 된 사례를 이야기했다. 이후 미국 미네소타가 이 몽족 난민들을 받아 들여 처음 6만명이 들어왔고 지금은 미국에서 자리를 잡아 변호사, 의사, 국회의원, 시의원까지 나올 정도로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미네소타는 오래 전부터 인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앞장서 왔다. 김 위원장은 “이번 심포지엄을 통해 인권에 앞장서는 미국 사회에 북한 난민문제를 제대로 알리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참여한 미국 패널들은 “이렇게 끔찍한 상황인지 전혀 몰랐다” “꼭 도와주고 싶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김 위원장은 “자기 문자도 없던 화전민 몽족도 미국에서 이렇게 도움을 받아 정착에 성공하는데 우리 탈북자들도 도움만 받는다면 그들 못지않게 열심히 잘 살 수 있을 것” 이라고 말하며 “한국정부가 힘들다면 이미 시스템화 되어있는 미국에서 그들을 먼저 보듬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미국은 난민문제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고 이민의 나라답게 난민들에 대한 차별과 멸시가 거의 없다. 김 위원장은 미네소타 교회 연합 협회의 활동을 소개하며 “150여 개의 교회가 힘을 합쳐 국가의 난민 지원금을 받아 체계적으로 1년여 간의 보호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날의 이야기들을 모아 북한 난민들의 미국 내 지위를 강화하고 안정적인 정착을 위한 관련법 강화조항을 만들어 내년 미네소타 주 의회에 상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미국 대사관이 나서서 중국으로 탈출한 북한난민들을 미국으로 이주할 수 있도록 중국 정부에 요청하도록 정부와 의회에 요구했다”며 “이번 심포지엄을 계기로 북한난민을 위한 비영리법인을 설립, 체계적인 난민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연극 ‘김치’와 ‘통일’로 문화공연


한편 심포지엄에 참석한 연극인 김진호 남북문화교류협력위원회 위원장은 연극 ‘김치’를 통한 한미 간 문화교류에 대해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재미교포가 많은 미네소타 주의 ‘무(巫)’를 비롯, ‘커트리’ 등 주요 소극장 관계자들과 콜라보레이션 공연을 모색할 방침”이라며 “미네소타 주에 거주하고 있는 2만 8천여 명의 한국인 입양아들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거쳐 연기자를 뽑아 2013년경 서울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올렸던 연극 ‘김치’와 ‘통일’을 주제로 한 연극을 만들어 내년에 공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이번에 미네소타를 방문해 김현 위원장을 비롯하여 마크 데이튼 주지사, 샌디 패퍼스 상원의원 등 미네소타 주 주요 인사들과 유기적인 교류를 위한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밝혔다.



북한이탈주민, 한국에서 그들의 생활은?


10월19일 미국 미네소타 주에서 ‘북한 난민 인권의 날’을 선포하는 등 북한 난민들의 미국 내 정착을 위한 대대적인 심포지엄이 열린 가운데, 한국에서도 10월29일 남북하나재단(이사장 손광주) 주최로 북한이탈주민들의 한국 내 정착사례를 발표하는 대회가 열렸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개최된 이번 대회에는 현재 하나원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탈북민 150여 명이 참여해 정착경험을 경청했다. 대회에 참가한 북한이탈주민들은 입국 후 실패와 성공을 거듭하면서도 끝내 자신의 꿈과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함으로써 주변에 감동을 준 이야기들을 후배 탈북민들에게 전했다.


재단 손광주 이사장은 “탈북민들이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통일기반 구축의 실질적 과정”이라며 “먼저 온 선배들의 정착경험담이 미래의 북한이탈주민들에게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탈북민들의 정착사례를 소개했다. 다음은 그들은 어떻게 한국에 왔고 어떻게 정착해 가고 있는지에 대해 글로나마 그들의 삶을 들여다봤다.


내 인생은 칠부능선 강인국 (시설관리공단 기술직)

탈북 해 늦깎이 대학 졸업 후 탈북민으로는 처음으로 1급 전기사 자격증 취득
꿈! 과연 꿈이란 무엇인가? 또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꿈이란 어떤 것일까? 나서 자란 정든 고향을 떠나 대한민국에 정착한 지도 벌써 13년째가 되어가고 있다. 조선로동당 당원이 되고 싶었던 첫 꿈이 이루어졌다면 형제의 나라라고 배웠던 중국 땅도 밟지 않았을 것이며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이지만 멀고멀게 느껴진 대한민국의 땅도 밟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곳에서 나는 지나온 날들보다 앞으로의 인생을 향하여 새로운 나의 발전을 위하여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결심했지만 쉽지는 않았다.


탈북민이라는 신분으로 산다는 것이 정말 어려웠고 아무리 한나라 한민족이라고 하지만 말투나 사회적 환경이 엄청나게 달랐기 때문이었다. 이른 새벽 건설현장에 나가서도 고향생각을 잊을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남들보다 훨씬 열심히 일했다. 낮과 밤을 쉬지 않고 일하다 보니 너무 힘들고 몸도 아팠지만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타향에서 눈물 흘리며 지나온 날들과 고향에 두고 온 보고 싶은 어머니와 가족 형제들과 친구들을 생각하면서 스스로 이겨내야만 했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탈북민으로서 전기기사 일급자격증을 땄을 때의 흥분과 기쁨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얼마나 기뻤던지 아파트 창문을 열고 꿈을 이루었다고 목청껏 소리를 지를 정도였다. 그렇게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해서 대학도 졸업했다.


4개의 국가기술 1급 자격과 기능장의 자격증까지 땄고 지금은 서울특별시의 지방 기업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 지금은 또 다른 자격증을 따기 위해 열심히 노력중이다. 그렇게 꿈은 꼭 이루어진다. 그러나 사실은 꿈도 중요하지만 그 꿈을 위해 얼마만한 노력을 했는가가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자기 자신에 대한 미래의 희망과 꿈이 있다. 하지만 꿈과 희망이 있다고 하여 다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노력할 때 그 꿈은 비로소 이루어지는것이다. 예전에 누군가 내게 해준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인생은 시작보다 끝이 중요하다. 실패에 좌절하지 말라, 실패는 성공의 열쇠이다.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 무엇이든 노력하면 된다! 노력하면 노력한 것만큼 이루어진다! 오늘도 나는 대한민국에서 더 큰 꿈을 꾸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달리고 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조은정 (스튜어디스, 전 카타르 항공)

검정고시로 초·중·고를 거쳐 대학 졸업 후 다국적기업인 카타르항공에 2년 동안 근무. 유창한 중국어를 바탕으로 메이크업아티스트 비즈니스 활동을 준비 중

나는 11살 때 가족을 따라 중국에 건너가 탈북자의 삶을 살게 됐다. 19살까지 약 8년간 중국에 살면서 항상 긴장과 두려움 속에 살았고,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 간절하게 소망했던 것이 대한민국에 오는 것이었다. 2007년 2월 몽골 올란바토르에서 인천으로 들어오는 비행기를 타고 한국 땅이 보였을 때는 정말 감동으로 눈물이 차올랐다. 11살에 처음으로 갖게 된 간절함이자 ‘꿈’ 이었고 또한 처음으로 이루어진 ‘꿈’이기도 했다. 한국생활 처음 시작 3년은 대학입학만을 꿈꾸며 열심히 공부했다.


그 결과 단기간에 검정고시를 통해 초·중·고등학교 졸업 자격을 땄고 원하던 대학교에 입학했다. 20살에 처음으로 영어를 배우게 됐는데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이 내게는 너무 즐거웠고 그래서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다. 그런 노력은 빛을 발해 졸업 후에는 뛰어난 영어 실력 덕분에 취업 선택의 폭이 훨씬 넓었다. 100:1의 경쟁을 뚫고 다국적 기업인 카타르항공에 채용되었다. 카타르항공은 아시아나항공과 싱가포르항공 등 전 세계 총6개의 5성 항공사 중 하나이며 전세계 항공사 중 최신 기종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항공사다. 드디어 어릴 때부터의 꿈이었던 승무원이 된 것이다. 입사 시험에서 키가 작다는 콤플렉스나 탈북민이라는 신분도 자신감으로 극복했다.


나는 탈북민이라는 것이 한국 사회에서 약점이 아닌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탈북민은 남한도 북한도 다 경험한 독특한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은 결과적으로 스스로 위축되지 않고 필요에 따라서 자신을 당당하게 소개할 수 있는 자신감을 키워주는 계기가 되었다. 글로벌 환경에서 자신을 소개할 때 그저 남한과 북한을 아울러서 ‘I am from Korea’라고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류스타의 나라, South Korea를 연상한다. 나는 명백히 한국 국적의 사람이기에 그것도 결코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제 나는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어느 나라 사람을 만나도 익숙하고 두려움이 없다. 그리고 마법의 그린카드로 보였던 여권을 발급받아 전세계 공항 출입국 심사대를 마음껏 통과하는 감격도 느꼈다.


 지금은 항공사에 사직서를 내고 다른 일을 꿈꾸고 있다. 앞으로 나의 목표는 중국에서 오랜 생활을 해 온 경험과 중국에 대한 친밀감과 이해력, 그리고 유창한 중국어 실력을 바탕으로 중국에서 메이크업아티스트로 새로운 사업을 하고자 준비 중에 있다. 나는 앞으로의 계획이 나에게 더 큰 삶의 목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따라서 더욱 적극적으로 창의성을 발휘하여 더 큰 삶의 도약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MeCONOMY Magazine November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