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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日 안보법제 통과, ‘전쟁을 원하는 나라’ 기우일까?

'동북아 안보 대립 격화 될 것'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평화헌법하에 소극적 평화주의를 실현하던 일본이 안보법제를 통과시키며 합법적으로 ‘전쟁이 가능한’ 나라가 되었다. 일본 국민들의 반대와 위헌 논란 등에도 불구하고 일본정부는 후속 조치를 서두르고 있다. 과거 제국주의 야욕이 일으킨 각종 전범 행위에 대한 적절한 사과도 이뤄지지 않은 일본이 시대를 역행하는 안보법제를 강행하면서 아베 정권의 검은 의도와 향후 동아시아 안보 위협에 대한 우려가 끊이지 않고 있다. 실제 일본의 의도는 무엇인지,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안보와 미래는 어떠한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알아 본다.


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인간이 만든 가장 강력하고 잔인한 무기인 원자폭탄에 의해 히로시마에서는 약 16만명, 나가사키에서는 약 8만명의 무고한 생명이 목숨을 잃었다. 나가사키 원폭 투하 6일 만인 8월 15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 선언을 끝으로 악몽 같았던 세계 2차 대전이 종지부를 찍는다.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 야욕은 무고한 시민들의 희생과 전쟁으로 피폐해진 영토만을 남긴 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일본의 전후처리는 포츠담선언에 따라 맥아더 장군(Douglas MacArthur)을 주축으로 한 연합국최고사령부 GHQ(General Headquarters)의 군정아래 실시되었다. 일본은 지난 전쟁의 대가를 뼈저리게 깨달았으며 GHQ의 궁극적 목적이었던 ‘전쟁없는 국가’를 표방하는 ‘평화헌법’을 수립하게 된다.


일본의 평화헌법 그리고 경제성장


‘평화헌법’으로 불리는 일본 헌법 9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일본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 평화를 성실히 희구하고, 국권의 발동에 의거한 전쟁 및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영구히 이를 포기한다. 이러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육해공군 및 그 이외의 어떠한 전력도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 역시 인정치 않는다.』


일본은 두 번 다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와 같은 고통을 미래 세대에게 짊어지게 할 수는 없다는 각성과 함께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총리의 ‘요시다 독트린’ 기조하에 ‘전쟁 없는 국가’로서 평화의 기틀을 마련하게 된다.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여 방위력을 최소화하였고 이를 통해 군사 예산에 최소한의 비용만을 지출하도록 했다. 이렇게 국방비를 절감할 수 있었던 일본은 경제발전에 국가 역량을 총동원하는 정책을 실현시켰다. 실제로 일본은 1953년에서 1965년 사이 평균 경제 성장률 9%에 이르렀으며 1965년에서 1970년에는 평균 8%를 유지하며 경제 부흥을 이루어 오늘날 세계 3위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따라서 ‘요시다 독트린’은 일본 경제 성장의 동력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경제 불황과 함께 찾아온 재무장에 대한 유혹


1990년대 영원할 것 같던 일본의 호황기가 갑작스러운 ‘버블 붕괴’ 사태와 함께 침체기에 접어들게 된다.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불리는 장기간의 경제 불황을 맞이하게 된 일본은 정치적으로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2000년대 등장한 자민당 출신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는 대대적인 개혁으로 경제 부흥을 꾀한다. 이와 동시에 노골적인 신사 참배로 극우주의 행보를 보이며 ‘강한 일본’에 대한 야욕을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한다. 2006년 아베 신조가 새로운 총리로 등장하면서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요시다 독트린’을 무력화 하려는 정치적 시도가 포착되었다.


아베 총리 역시 ‘아베 노믹스’를 필두로 한 경제 최우선 정책으로 인기 몰이를 하는한편 다른 쪽에서는 각종 극우주의 망언과 더불어 ‘일본 재무장’을 관철시키려는 작업을 점진적으로 실시하였다. 2007년 제1차 아베 정권은 헌법 해석변경을 통한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용인을 취지로 한 ‘제1차 보고서’를 제출한 바 있고 2012년 제2차 아베 정권 때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 문제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한다. 2013년에는 외교·안전보장체제 일부 전환이 이루어지고 2015년 4월에는 아베총리가 직접 미국 국회연설을 통해 여름까지 법안을 성립하겠다고 표명하기도 했다.


민의(民意) 무시한 안보법제 통과


지난 7월16일 대다수 야당 의원이 퇴장한 가운데 안전보장관련법안(이하 안보법제)이 강행 체결됐다. 이어 9월에는 일본 참의원이 안보법제를 19일 새벽 본회의에서 가결로 성립시켰다. 이 안보법제는 기존의 헌법해석을 변경하여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고 자위대의 해외활동 범위를 확대한다는 것에 방점이 찍혀있다. 이로써 아베 정권은 외교·안전보장체제 전환의 마지막 과제인 헌법 개정만을 남겨두게 되었다.


안보법제 통과 소식과 함께 국제사회를 놀라게 한 것은 일본 국민들의 대대적인 안보법제 반대 운동이었다. 10~20대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학생긴급행동’(SEALDs)이 구성된 것이다.


일본은 지난 70년 동안의 자유·민주주의 전통과 그 기반인 헌법적 가치의 수호, 입헌주의 존중, 건전한 성장과 공정한 분배에 의한 생활보장, 평화적 외교·안보 정책 등을 제시하고 반대 시위를 통해 직접 행동에 나섰다(SEALDs 2015). 평화를 수호하고 전쟁을 반대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노벨상 수상 작가인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郎), 일본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와 같은 저명인사들의 참여로 일본사회에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국민적 반대 운동으로 퍼지게 하는 데 큰 역할을 수행하였다.


시민사회는 여전히 안보법제의 ‘날치기 통과’의 무효를 주장하는 서명운동과 안보법제의 위헌성에 대해 논의하며 꾸준한 반대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실제로 도쿄신문 서울지국 나카무라 기요시 국장은 아베 정권에 의해 졸속 처리된 안보법제가 민의와는 다르다고 주장했다. 2013년 7월 참의원 선거, 2014년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공명당의 연립여당이 대승을 거둔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 아베 총리는 경제정책을 최대 쟁점으로 삼았었다. 9월20일 발표된 교도 통신의 긴급 여론조사에서 아베 내각 지지율은 30%대로 떨어졌으며 응답자의 80% 이상은 “법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나카무라 국장은 “기성 정당에 대한 유권자의 불신이 ‘기권’이라는 소극적 투표행동으로 드러나 실제 국회의석 수에 민의가 반영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따라서 “이러한 민심과 국회의 괴리가 대규모 시위의 한 원인이 되었다”고 보았다. 미·중 패러독스와 일본의 보통국가로의 열망 일단 안보법제는 통과 되었다. 국민이 반대하고 세계적 흐름에도 역행하는 일본 정부의 무리한 안보법제 통과는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지난 10월8일 한반도평화포럼의 주최로 <한일수교 50주년 심포지엄 : 21세기 동북아정세 변화와 한일관계>의 재구축>이 한일 동시통역으로 진행되었다.


제1섹션 ‘일본의 안보법제와 동북아 평화체제의 구축’에 대한 발표를 맡은 고려대 일본연구센터 서승원 소장은 금번 안보법제가 “아베 정권이 추진해온 외교·안보체제 전환이라는 큰 그림의 일부”라고 이야기 했다. 과거 ‘요시다 독트린’은 헌법 9조와 일본에 대한 미국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대외정책 노선이었다. 중국의 부상과 그에 대한 견제를 위한 미국의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 정책은 중국을 견제할 동아시아의 파트너로서 일본의 역할을 강조하게 된다.


따라서 아베 정권은 소극적·수동적 평화주의인 ‘요시다 독트린’을 대체하기 위해 이른바 ‘적극적 평화주의’를 실현하여 미국의 기대에 부응하는 강한 일본이 되기 위해 안보법제를 통과시킨 것이다. 일본의 주장에 의하면 안보법제는 ‘시대착오적인’ 과거 노선(요시다 독트린)을 대체하여 일본의 위상에 걸맞은 세계적 안전보장을 위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조치인 것이다.


이처럼 일본의 재무장, 집단 자위권 행사와 같은 ‘강한 국가’로의 전환시도는 미국과 중국의 대결구도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심포지엄 토론자로 나선 한동대학교 국제정치학과 김준형 교수는 동북아 패러독스를 설명하며현 동북아의 군비경쟁 가속화 현상을 진단하였다.즉, 미국과 중국이 서로가 서로를 가장 필요로 하는 상호의존 관계에 있으면서도 동시에 서로를 위협과 경쟁자로 바라보는 패러독스에 빠져 동북아에 경제적 상호의존에 대한 요구 증가와 동시에 정치·안보 분야에서는 군비경쟁, 역사논쟁 등을 통해 긴장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실제로 안보법제가 중국을 적국으로 명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일본 해상자위대와 미군의 공동 행동을 위한 법적근거를 정비하여 중국의 해양활동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명확하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본질적으로 안보법제를 비롯하여 아베 정권의 새로운 외교·안보 정책은 미일 대 중국 구도를 이용해 대국 간 정치에 다시 참여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에 다름 없다”고 말했다. 일본 안보법제 통과에 따른 반응도 미·중이 극과 극으로 나뉘었다. 미국 국무부는 “지역과 국제 안보활동에서 더 적극적인 역할을 맡으려는 일본의 노력을 환영한다”는 성명을 발표하며 일본을 법의 지배를 지키는 모범국가라고 평가했다. 반면 중국 외교부는 “일본이 최근 군사력을 강화하며 안보 정책을 바꾼 것은 평화, 발전, 협력의 시대 조류와 전혀 맞지 않는다”는 논평을 발표하며 불신을 감추지 않았다.



韓·美·日·中 온도차


아베 정부는 안보법제의 정당성을 중국의 군사적 대두와 북한의 핵, 미사일 개발 등 동아시아의 안보 위협 요소 제거로 들며, 보다 ‘적극적인 평화주의’를 실천하겠다고 강조했다. 물론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우리나라에 한·미·일 대북 공조가 대북 억지력 향상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긍정적 효과도 있어 일본의 재무장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볼 필요는 없다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평화헌법은 제국주의 침략 야욕으로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한국을 식민 지배했던 전범국 일본에 일종의 쇠고랑과 같은 제약이었다. 적절한 과거사에 대한 사과와 반성 없이 재무장을 도모하는 일본에 대해 한국의 입장에서는 경계심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한일 관계 악화를 우려하는 미국의 의향을 의식한 우리나라는 다소 어중간한 입장을 보였다. 한국 외교부 대변인은 한국 정부는 평화헌법 견지를 바란다는 것과 자위권 행사 시 한국의 요청·동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할 따름이었다.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북한의 위협을 근거로 한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가 도리어 한국에 대한 반격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안보법제가 통과되자마자 우리나라 언론들은 일제히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가 한국의 동의 없이 파병될수 있는가 여부에 대한 규정이 불분명하다고 지적해왔다.


이런 속에서 21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이 10월20일 한민구 국방장관과 나카타니 겐(中谷元) 일본 방위상의 한·일 국방장관 회담에서 일본 자위대의 북한지역 진입 시 한국정부의 사전 동의 문제에 대한 대화 내용을 공개했는데 나카타니 방위상이 “한국의 지배가 유효한 범위는 휴전선의 남쪽”이라며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힌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21일 국방부 대변인은 “북한 영역과 관련된 문제는 한·미동맹, 한·미·일 협력의 틀 내에서 협의되어야 할 사안으로 유사시 우리의 국익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한·미·일 협력(DTT)을 통해 일본의 군사 활동은 조율될 것”이라고 밝혀 여전히 일본과 안보에 대한 의견 조율이 필요함을 시사하였다.


극우 색 짙은 아베 정권… ‘전쟁 원하는 나라’ 될까


지난 7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3기 내각의 베일이 벗겨졌다. 경제·외교 핵심 장관은 유임시키고 새로운 극우성향 인사들로 내각을 구성하여 향후 한일관계에 암운이 감돌았다. 극우 성향 역사교과서를 높이 평가했던 대표적 보수우익 성향의 하세 히로시(馳浩) 중의원을 문부과학상에 임명했고, ‘다케시마의 날’ 행사에 참여했던 시마지리 아이코(島尻安伊子) 참의원을 오키나와·북방영토담당상에 임명하였다. 특히 올 2월 “일본에는 전범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둥 역사 문제와 관련된 망언을 일삼던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를 관방 부장관에 임명하였다. 동북아에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려는 일본과 대화를 통해 서로의 역할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는 시점에 극우 성향의 내각은 방해물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와중에 아베 정부가 2014년 4월 무기 수출을 원칙적으로 금지해온 기존의 ‘무기수출 3원칙’을 대체하는 ‘방위 장비 이전 3원칙’을 수립하여 무기 수출을 일정 조건하에 원칙적으로 승인하는 정책으로 전환한 것이 알려지며 파장이 일고 있다. 안보법제를 통해 전쟁이 가능한 나라가 된 일본이 무기 수출까지 가능해지면서 방위산업을 경제성장으로 연결시키고자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대로 가다가는 ‘전쟁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나라가 될지 모른다’고 지적할 정도로 일본 정부가 방위 산업을 적극 지원하는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적극적이고 단호한 안보 전략 필요


미·중 대립 구도라는 거대한 그림 속에 일본의 안보법제 통과는 동북아의 대결구도를 가속화한다는 점에서 ‘신냉전’의 도래가 아니냐는 분석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10월27일, 남중국해에서 벌어진 미국과 중국의 군사 충동위기는 주변국들을 일순간 긴장시켰다. 미중의 대립이 점차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최대 수출지로서 경제협력국인 중국과 전통적인 안보 동맹국인 미국 사이에 한국이 있다. 일본은 강력한 미일 동맹을 기반으로 안보법제를 통과 시켜 미국 편에 서서 중국을 자극하고 있다. 서승원 소장은 진정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일본과의 적대적 동맹 관계를 끊어내어 동북아에서 다자간 주의를 재건해야 한다”그리고 “일본과 한국의 안보협력은 불가결하다”고 주장했다.


미중대립 구도로 인한 편 가르기에 휩쓸려 동북아 안보에 위협이 되지 않도록 두 대국 사이에 끼인 일본과 한국의 역할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 두 국가의 협력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교착 상태에 빠져 있는 북핵 문제 등 어느 나라보다 국제적 안보협력이 필요한 우리나라는 보다 평화구축의 중심적 역할에 나설 필요가 있다. 대국들의 눈치를 보느라 국민의 안보를 책임지는 정부가 애매한 태도로 일관하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다. 보다 단호하게 일본과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고 발전적인 관계를 모색해 동북아 평화를 위해 앞장서 나가야 할 것이다.


MeCONOMY Magazine November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