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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분석

징계시효를 아십니까?

공무원·공기업 등 공공기관의 비리가 잊을만 하면 터져 나온다. 하지만 똑같이 비리를 저질렀는데 누구는 처벌을 받고 누구는 처벌받지 않는다. 바로 징계시효 때문이다. 징계시효만 지났다면 들켜도 그만이다. 한국농어촌공사가 지난 2013년 내부 승진시험지 유출 건으로 관련자 모두를 해고했는데, 일부 징계시효가 지난 자들이 소송을 제기해 법원에서 승소하고 이제 회사로 돌아온다는 소식이 들린다.


끊이지 않는 비리


한국농어촌공사 본사 과장(4급) A와 차장(3급) B는 공모해 2년간 허위인부 8명의 인건비 명목으로 총 8천263만원을 인부계좌로 지급되게 한 뒤, 인부 8명에게 계좌사용대가로 1천273만원을 주고, A는 4천771만원, B는 2천219만원을 돌려받아 개인적인 용도 등으로 사용한 것으로 감사결과 드러났다. 본사 뿐 아니라 경기·경북·경남·충남지역본부 등 조직 전반적으로 이런 비위행위가 만연한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2월17일 한국농어촌공사(본사, 7개 지역본부, 기술안전품질원)를 대상으로 일용직 인건비 집행실태를 점검하고 감사결과를 발표했다. 감사원은 감사결과 본사에서 ‘농경지 오염실태조사’ ‘지하수 영향조사’ 등 중앙정부나 지자체로부터 수탁한 사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실제 일을 하지 않은 일용직 인부(이하 허위인부)가 일을 한 것처럼 서류를 작성해 허위인부 계좌로 인건비를 지급한 후 이를 되돌려 받는 방식으로 인건비를 취득하는 사례가 조직전반에 걸쳐 장기간 발생하고 있었고, 수탁사업의 일부를 민간업체에 재위탁하면서 특정업체에 일감을 몰아주기 위해 사업규모를 2천만원 이하로 쪼개는 방식으로 수의계약으로 발주하거나 대가로 금품을 수수하는 사례를 적발했다.


또한 이런 비위행위가 다수 직원들에 의해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데도 이를 차단할 수 있는 내부통제시스템이 전혀 작동되지 않는 문제점도 발견했다. 이에 감사원은 한국농어촌공사 사장에게 인부의 인건비를 취득한 직원 등 비위행위자 26명 중 15명에 대해서는 징계를 요구(파면 9명, 해임 1명, 정직 2명, 경징계 이상 3명)하고, 징계시효가 경과한 11명에 대해서는 재발 방지를 위해 엄중한 인사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인사자료로 활용토록 통보했다. 또 재발방지를 위해 일용직 채용·관리기준을 마련하는 한편, 회계시스템을 재확립하는 등 다각적인 대책을 강구하도록 통보했다.


법원, 징계시효 도과로 해고 무효


공기업들의 비리행위는 잊을만 하면 단골메뉴처럼 도마 위에 오른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국민의당(당시 새정치민주연합) 김승남 의원은 “한국농어촌공사 조직의 비리가 승진시험, 신규채용, 공사비리, 업무태만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면서 “감사조직 인력을 대폭 확충하여 투명하고 신뢰받는 조직으로 탈바꿈하도록 노력하라”고 질타했다.


농어촌공사는 97년부터 승진시험 출제 및 관리 등을 위탁한 한국생산성본부 직원과 농어촌공사 직원이 결탁하여 승진시험지를 빼돌리고 그에 대한 대가(약 6억원)를 수수하다 2014년 1월 연루자 60명 중 형사처분을 받았다(구속 5, 불구속 25, 공소시효 경과자 불입건 30). 농어촌공사는 60명 전원을 직위해제 조치했으나 징계시효가 경과한 30명이 해고무효 확인소송을 제기해, 지난해 10월 기준 15건은 1심 진행 중, 12건은 2심 진행 중, 3건은 3심이 진행예정이다. 1심 결과는 전부패소 6건, 일부승소 9건, 2심 결과는 3건 모두 패소했다.


김승남 의원은 "문제는 징계시효 경과로 패소할 경우 기존의 선의의 승진 누락된 직원들은 또 한 번의 상처를 입게 된다"며 "특히 4급에서 3급으로 승진하기 위해서는 최소 5년 이상~15년 이상이 되어야 승진 후보자가 되고, 대상자 중 성적, 경력, 가산점수 등으로 선발하는데 인사정체는 불 보듯 뻔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현재 비위를 저지른 공사 직원이 징계시효 도과로 해고무효확인 소송에서 승소하고 회사로 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다. 농어촌공사 관계자는 "현재 일부 근로자가 승소하고 대법원에서 복귀명령을 내린 상태라 회사는 복직을 시킬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이번 2월17일 감사원 결과에서도 감사에 적발된 26명 가운데 11명에 대해서는 징계시효가 지나 사실상 인사자료로 활용하는 방안 외에 딱히 징계를 가할 수가 없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농어촌공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현행 국가공무원법이 징계시효를 규정하고 있고, 공사·공단 등이 이 인사규정을 그대로 가져가면서 현재 대부분의 공사·공단 등 공기업에서는 징계시효를 규정하고 있다. 예외규정도 없어 시효기간만 지나갔다면 들켜도 그만인 셈이다.


그렇다면 일반 사기업은 어떨까. 일반기업도 취업규칙에 징계시효를 둘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서울 서초에서 대기업 인사팀에서 근무하고 있는 박성수 씨(34, 가명)는 “징계시효라는 말을 처음 들어봤다”면서 “공무원의 특성상 규정돼 있는 것 같은데 우리 같은 일반 사기업은 어림도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였다. 명동에 중견기업 인사총무부에서 근무하고 있는 박길식 씨(45)도 “처음 들어봤다”며 “사기업에서 징계시효라는 것은 어림없는데 공기업에서는 밥 먹듯이 터져 나오는 것”같다며 어이없다는 반응이었다.


징계시효 제도란


현행 국가·지방공무원법은 징계 사유가 발생한 날로부터 3년, 금품·향응을 주고받거나 공금을 횡령·유용한 경우는 5년의 시효를 두고 있다. 이 기간이 지나면 징계할 수 없다. 대부분 공기업도 이 규정을 그대로 가져오면서 각종 비리적발에도 처벌하지 못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징계는 근로자의 비위행위에 대한 징벌이라는 점에서 범죄에 대한 형벌과 유사한 성격을 띤다. 징계시효의 취지는 사용자가 비교적 장기간에 걸쳐 징계권 행사를 게을리 해 근로자로서도 이제는 사용자가 징계권을 행사하지 않으리라는 기대를 갖게 된 상태에서 사용자가 새삼스럽게 징계권을 행사하는 것은 신의칙에 반하므로 이 기간이 경과한 경우 사용자의 징계권 행사에 제한을 가해 근로자가 불안정한 지위에 있게 하는 것을 방지하는데 있다. 따라서 징계시효가 만료된 비위행위에 대해 행한 징계처분은 무효 또는 취소사유가 된다.


징계사유가 발생한 날이란 비위행위가 있었던 날을 의미하고, 비위행위가 연속해 계속 됐을 경우에는 그 행위의 마지막 날을 발생한 날로 본다. 감사원에서 조사 중이거나 또는 검찰, 경찰 등 수사기관에서 수사 중임을 이유로 징계절차를 진행하지 못해 3년 또는 5년(금품·향응수수·공금횡령·유용)의 기간이 지나거나 남은 기간이 1개월 미만인 경우에는 징계시효 기간은 그 조사나 수사의 통보를 받은 날로부터 1개월이 지난날에 끝난 것으로 본다.


아직 2년 규정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어


국가공무원법도 징계시효가 늘어나 3년 또는 5년인데, 늘리라는 권고조치도 3년 넘게 받아들이지 않는 기관도 있다. 감사원은 1월6일 서울도시철도공사와 서울메트로 기관운영감사 결과를 공개했다. 감사원은 2011년 이후 총 191명의 직원이 음주운전 단속에 걸린 사실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서울메트로 직원은 129명, 서울특별시도시철도공사 직원은 62명으로 드러났다.


서울메트로는 2012년 서울시의 감사결과에 따라 음주운전 비위행위자 182명을 통보받아 징계 등 조치한 이후 2015년 9월까지 음주운전 사실을 자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지 않고 있었으며, 2013년 서울시로부터 징계시효를 늘리라는 통보에도 노사합의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대로 두고 있었다. 감사원 감사기간 동안 적발된 129명은 음주운전 사실을 신고하지 않아 징계 등 어떤 불이익을 받지 않고 근무 중이었다. 129명 중 32명은 징계시효가 지나 징계처분을 받을 수 없는 상태였으며, 2명은 승진 임용되기도 했다.


서울특별시도시철도공사도 2011년 서울시로부터 음주운전 비위행위자를 징계처분 할 수 있도록 징계기준을 강화하고, 일반비위행위자에 대한 징계시효를 3년으로 늘리는 등 음주운전을 줄이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통보했다. 하지만 서울특별시도시철도공사도 노사합의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2015년 10월 현재까지 면허정지 처분을 받은 직원을 ‘경고’로 처리하는 기준과 징계시효 2년의 규정을 그대로 두고 있었다. 이에 면허정지처분을 받은 9명은 경고처분만 받고 있었다.


62명은 음주운전 비위를 저지르고도 2015년 9월까지 음주운전 사실을 신고하지 않아 징계 등 어떠한 불이익도 받지 않고 근무 중이며 그 가운데 26명은 징계시효가 도과해 징계를 받을 수 없는 상태였다. 1명은 승진임용이 됐다.



처벌받지 않는 비위공직자들, 국민들은 상대적 박탈감만


서울특별시도시철도공사와 서울메트로 두 곳 모두 직원이 음주단속에 걸린 사실을 알지 못했다. 내부감시·통제 기능은 부재한데다 징계시효 규정을 3년으로 늘리라는 통보도 듣지 않았다. 결국 이들 가운데 58명은 이미 징계시효가 지나 징계처분을 내릴 수 없는 상황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가운데 3명은 징계처분을 받지 않은 채 승진했다.


결국 감사원은 징계시효가 남아 있는 직원에 대해서는 징계 조치를 하고, 징계시효가 지난 직원에 대해서는 인사자료로 활용하라고 통보할 수밖에 없다. 서울메트로는 징계시효를 연장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며 음주운전 비위행위자에 대한 징계기준 강화도 충분히 검토해 대책을 수립하겠다는 의견을, 서울특별시도시철도공사에서는 음주운전 비위자를 엄격히 처분할 수 있도록 징계양정기준을 개정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공무원·공기업 비리가 터질 때마다 징계시효가 도마 위에 오른다. 그때마다 징계시효를 늘려야 한다거나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애초에 2년이었던 징계시효도 현재는 3년으로 늘어났다. 국회에는 7년, 10년으로 늘려야 한다는 법안, 폐지 법안 등이 올라가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기업에서는 보기 힘든 징계시효. 더욱 청렴성과 사명감이 요구되는 공무원·공기업 직원들이 비리를 저질러도 징계시효가 도과됐다는 이유만으로 처벌을 피하면서 국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MeCONOMY Magazine March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