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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분석

의료분쟁조정법...의료계와 환자단체 간 의견차 좁혀질까?


[M이코노미 조운 기자]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법」은 의료인의 과실로 환자가 상해나 사망 등의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환자와 가족들은 의료사고로 인한 피해를 신속·공정하게 구제받을 수 있도록 하고 보건의료인은 안정적인 진료환경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최근 이 「의료분쟁조정법」이 환자들을 적절하게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는 여론이 커지면서 2014년 개정안이 발의돼 올 2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의결되며 진전을 보였다. 하지만 이를 둘러싼 의료계와 환자들의 입장 차가 평행선을 달리면서 법안 통과의 길은 쉽지 않아 보인다. 그 속으로 들어가 봤다.


1988년 대학가요제에서 ‘그대에게’를 부르며 가요계에 화려하게 등장한 가수 신해철 씨가 2014년 10월 돌연 사망했다. 전 국민에게 얼굴이 알려진 공인인 가수 신해철 씨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고 이후 그의 사인(死因)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었다.


故신해철 씨는 2014년 10월 서울 강남 모 병원에서 위장관유착박리술과 위축소수술, 일명 위 밴드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수술을 받은 지 얼마 안 돼 가슴통증과 고열을 호소했고 신 씨는 응급실로 이송되었다. 신 씨를 둘러싼 괴소문만 무성하던 며칠 뒤 결국 신 씨는 병원에서 숨을 거두고 만다.


유가족들은 그의 죽음이 병원 측의 의료사고였다고 주장했고 병원측에 진실규명과 책임을 묻기 위해 소송을 걸었다. 현재 신 씨의 수술을 맡았던 병원장 K모 씨는 업무상과실치사 혐의 등으로 2015년 8월 검찰에 불구속 기소되어 형사재판이 진행 중이며 신 씨의 유족으로부터 23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 절차도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명인이 의료사고로 인해 사망에까지 이른 이번 사건으로 그의 가족과 친구, 팬들은 해당 병원과 의사의 행태에 분개했다. 이와 함께 과거에는 크게 조명받지 못했던 의료사고와 관련한 문제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2014년 1월에는, 초등학교 3학년인 전예강 양이 서울 한 유명대학병원 응급실에 실려 갔다가 7시간 만에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평소 건강했던 딸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가족들은 의료사고를 의심했지만 병원 측은 이를 부인했다. 유가족들은 같은 해 3월 보건 복지부 산하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료중재원)에 사실조사와 피해구제를 받을 수 있는 조정신청을 넣었지만 병원측이 조정을 거부해 조정신청이 각하됐고 결국 유가족들은 같은 해 6월 병원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본래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의료사고로 인한 피해를 신속·공정하게 구제하고 보건의료인의 안정적인 진료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제정된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약칭: 의료분쟁조정법)에 따라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의 료분쟁조정중재원’을 통해 조정중재를 진행할 수 있다. 의료사고 피해자(환자)에 대한 신속·공정한 구제와 의료인의 안정적인 진료환경 조성을 목적으로 2012년에 만들어졌지만 피신청인, 즉 병원측이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위의 전예강 양의 사례처럼 조정신청은 각하된다. 실제로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개원한 이래 총 5천487건의 조정신청 중 43.2%에 해당하는 2천342건만이 개시되었고, 3천077건은 상대방의 부동의 또는 14일간 무응답으로 각하되었다. 즉, 조정신청자의 절반 이상인 56.8%가 의료분쟁조정제도를 이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조정신청이 기각된 의료사고 피해자가 할 수 있는 다음 조치는 병원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막대한 돈과 시간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고 의료소송에서 상대적으로 정보가 부족하고 전문성이 떨어지는 환자측이 직접 의사의 과실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병원측이 제공한 기록에서 의료진의 과실을 밝혀내는 일은 쉽지 않다. 이처럼 열세에 놓여있는 의료사고 피해자 환자들의 사례가 알려지면서 2014년 3월 오제세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의료소비자의 권익 보호 차원에서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 …의료분쟁 조정절차 자동 개시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법 개정안」(이하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은 사망이나 중 증상해 등 의료사고의 피해를 입은 당사자와 유족이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조정신청을 하면 의사, 병원의 동의와 상관없이 분쟁 조정이 시작될 수있도록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 가운데 신청안이 명백히 거짓이거나 조정하기 적정치 않은 사건이라면 조정부에서 종결하기로 했다. 개정안은 또 신청인인 환자측이 병원이나 의원에서 난동을 부리거나 업무방해 등 신뢰를 저해하는 행위를 한 경우나, 조정절차 개시에 대해 부당 사유가 있는 경우 등에 대해서는 피신청인이 이의신청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이의신청의 이유가 있으면 의료분쟁조정중재원장이 조정신청을 각하할 수 있다. 다만 조정신청이 남발될 수 있다는 지적에 따라 대상을 사망이나 중·상해에 국한하기로 했다.


하지만 2014년에 발의 된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은 1년이 넘도록 국회에서 계류했다. 이후 대표적인 사례인 전예강 양과 신해철 씨의 이름이 붙어 ‘예강이법’, ‘신해철법’ 으로 알려지며 대중의 관심을 모았다. 특히 지난 2월12일(금)에는 고(故) 신해철이 이끈 록밴드 넥스트와 가수 홍경민, 남궁연이 국회에서 ‘의료법 개정 공청회 추진을 위한 라이브 콘서트’를 개최해 법안통과를 위한 여론 형성에 나서기도 했다.


결국 2월17일(수)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전체회의를 개최해 사망 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상해 의료사고 발생 시 상대방의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의료분쟁 조정절차가 자동개시 되도록 의결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조정을 하게 되면 법적인 소송으로 가는 경우보다 시간이나 비용, 자료제출 등의 부담이 훨씬 단축된다”며 “환자입장에서는 신속한 절차를 밟을 수 있어서 좋고, 의료기관에서도 소송부담을 덜 수 있어 긍정적인 제도”라고 설명했다. 이 개정안이 앞으로 국회 본회의 그리고 국무회의를 거쳐 공포될 경우 6개월 이후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의료계 개정안 반대, “포퓰리즘적인 졸속입법”


국회에 계류 중이던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이 급물살을 타며 별 무리 없이 통과될 것으로 점쳐졌으나 2월1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의결 직후 대한의사협회와 대한평의사회를 포함한 의료계는 반대성명을 릴레이로 발표하며 거세게 반발했다. 의협은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이 “사회적 이슈에 휘말린 포퓰리즘적인 졸속입법”이라며 “그 결과 방어진료를 부추기고 안정적인 진료환경을 저해하며 궁극적으로는 국민과 의료기관, 의료인 모두에게 피해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하며 법안심의의 즉각적인 중단을 촉구했다.



의협은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에서 정하고 있는 ‘중상해’에 대한 판단의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에 의료전문가에 의한 면밀한 검토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현행 의료사고감정단과 감정부 구성에 있어 의료전문가의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의료사고 브로커의 개입을 막고 변호사가 아닌 사람을 대리인으로 선임하기 위해서는 조정중재원장의 허가를 얻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위헌적 소지가 있는 손해배상 대불금조항을 삭제하고, 분쟁조정절차가 환자의 증거수집 절차로 악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민사소송에서의 원용금지조항을 마련하는 한편, 의료행위와 관련한 경미한 손상만이 발생한 경우에도 무소불위의 의료사고 조사가 진행되도록 하는 현행 규정이 반드시 개정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주현 의협 대변인은 “분쟁조정 자동개시는 원칙적으로 당사자 간 자율적인 분쟁해결이라는 의분법의 취지를 몰각한 것”이라고 꼬집으면서 “의료전문가단체의 전문성을 묵살하고, 합리적인 의료분쟁조정법 개정방안을 제안한 의협의 의견을 배제한 참담한 결과는 국회와 정부가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환자단체 개정안 찬성, “국회 현명한 판단 촉구”


의료계의 반발이 이어지는 속에 한국백혈병환우회,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 암시민연대 등이 소속된 한국환자단체연합회도 2월22일(월) 성명을 발표하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현명한 판단과 신속한 통과를 촉구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은 개원 시부터 ‘의료분쟁 조정절차 자동개시제도’를 도입해 소비자의 신속한 피해구제가 존재 목적”이라고 밝히며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의 어떠한 조건도 붙이지 않은 ‘의료분쟁 조정절차 자동개시제도’ 도입이 최선책이라는 점에 동의하면서도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사망 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상해’로 그 적용범위를 제한해 통과시킨 차선책에 대해서도 반대하지 않았
다”고 밝혔다.


특히 의료계가 반발하고 있는 ‘의료분쟁 조정절차 자동개시제도’의 적용범위에서 ‘중상해’ 의료사고에 대해, ‘사망’ 의료사고의 경우 의료분쟁조정중재원보다는 법원을 선호하고 전체 의료사고 비율에 비하면 극히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에 의료분쟁조정제도 이용의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하며 핵심이 ‘중상해’ 의료사고라고 밝혔다. 따라서 의료사고 피해자 입장에서 ‘의료분쟁 조정절차 자동개시제도’의 적용범위와 관련해서는 ‘사망 또는 중상해’가 더는 물러설 수 없는 마지노선이라고 못 박았다.



쟁점법안에 매몰된 국회


법의 당사자인 의료계와 환자단체의 의견차가 점점 벌어지면서 최근 경쟁하듯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법안 당사자간 의견대립이 점차 감정싸움으로 번져 사회적 분열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마저 든다. 올 4월 총선을 앞두고 마무리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19대 국회는 아직 처리해야 할 법안들이 산적해 있는데도 쟁점법안에만 매몰되어 마비되는 모양새다. 국민들의 분열을 막고 이를 중재하는 것이 국회의 역할이다. 어떤 법안도 ‘대충’ 처리해도 되는 것은 없다.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이 진정 사회를 위한 법안이 되기 위해 국회의 현명한 역할을 기대한다.


MeCONOMY Magazine March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