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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분석

『신년 특별기획』 생명을 살리는 흙의 건강 처방전

건강한 흙과 건강한 농산물의 조합을 위한 국민의 건강과 직결된 흙의 가치를 찾는다

요즘 채소와 과일은 진한 맛이 부족하고, 고유의 향이 떨어진다. 왠지 싱겁고, 조금만 밖에 놔둬도 쉬 무르며 시들고 썩기 시작한다. 영양성분도 40년 전의 그것보다 5분의 1로 줄어, 사과는 3개, 오렌지는 8개를 먹어야 예전의 한 개 분에 해당하는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다고 한다. 시금치의 철분은 13mg에서 2mg으로, 총 영양가도 150mg에서 35mg으로 뚝 떨어졌다. 이는 당근, 양배추 등 우리 식탁에 올라오는 거의 모든 채소도 마찬가지여서 상추의 경우, 먹어도 풀을 먹는 듯하고 예전처럼 꾸벅꾸벅 졸리지도 않는다. 이는 화학 비료와 농약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생산량 위주의 관행 농업 탓으로, 흙이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갈수록 황폐(荒廢) 되고 있는 이 땅의 흙을 되살려, 우리 농산물이 몸에 좋은 약초처럼 되게 할 수 있을까? M이코노미뉴스는 윤영무 기자가 간다, 『생명을 살리는 흙의 건강 처방전』을 통해, ‘건강한 흙과 건강한 농산물의 조합’을 창출하는 현장과 건강 정보를 매달 4회씩 소개함으로써 국민의 건강과 직결된 흙의 가치를 재조명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들어가는 말 】 생식(生食)하기로 하다

 

종합병원에서 최종 검사 결과를 통보받은 날, 담당 의사는 내게 새로운 약을 처방하면서 함께 먹어서는 안 되는 과일 몇 가지를 알려줬을 뿐, 평소 생활습관대로 해도 괜찮다는 거였다. 하지만 나야말로 오래전부터 고혈압약 등 다른 약을 한 움큼씩 먹어온 터라, 또 다른 약을 먹으면, 몸에서 불같은 화학반응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상상했다.

 

“선생님, 저는 고혈압약에, 당뇨약에 고지혈증약까지... 이 약까지 먹으면 아무래도...”

 

나는 말끝을 흐리면서 의사의 눈치를 살폈다. 화강암을 깎아놓은 듯한 눈매의 의사가 내 말을 말없이 듣다가, 먹는 약의 종류를 묻고는 가볍게 던졌다.

 

“드시는 약이 많군요. 고혈압약 등은 그대로 드셔도 되고, 문제는 고지혈증약인데 일단 드시다가 검사를 통해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럴까....요?”

 

기대와 다른 의사의 소견에 내 목소리는 나지막해졌지만, 속으로는 그게 아니었다.

 

“그럴 줄 알았어, 그러나 이번만큼은 내 마음대로 하겠어. 이번에 처방받은 약을 빼고, 나머지 모든 약은 끊어버린다. 약이여 안녕!” 하고 선언을 한 거였다.

 

약을 끊어버리겠다는 내 결심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몸이 아픈 신호가 오고서부터였다. 누구나 몸이 편치 않으면 이런저런 의약 관련 서적이나, 유튜브 건강 정보 등에 관심을 가지질 않는가, 나 역시 그랬는데 우연히 내 책꽂이에서 『목숨 걸고 편식하다, MBC 프로덕션, 2009년』 다소 모순적이고 메시지가 강력한 제목의 책을 발견했다.

 

MBC 스페셜 제작팀이 짓고, 주이상 글이라고 된 그 책을 훑어보는 순간-140페이지로 두께가 엷었다-나는 몽둥이로 뒤통수를 세게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이 책의 주인공인 황성수(당시 59세, 대구의료원 신경외과 과장) 박사는 치매 환자와 중풍 환자 등 혈관 질환 환자를 주로 돌봐왔는데, 점점 살기 좋아지는 세상에 왜 이런 환자가 많이 생길까?를 두고 고민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그는 ‘우리의 식습관에 문제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고, ‘고기, 생선, 계란, 우유를 먹지 않는’ 순 식물성 자연식 밥상 치료를 시작했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어느 날, 황 박사는 회진을 돌다가 할머니 환자에게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제가 첫날, 혈압약, 당뇨약 다 없애버리고 했을 텐데요?”


“어짜꼬, 정말 이거 없애도 됩니꺼?”

 

환자 중에 할머니 한 분이 혈압약을 숨겨 놓고 먹으려다가 황 박사에게 딱 걸리고만 것이다.

 

“왜요, 나중에 또 잡술라고요? 아까워요?”


“아니지예, 과장님이 버리라카시니 버려야 안되겠습니까?”

 

황 박사는 환자들에게 몇 년, 길게는 몇십 년 복용해 오던 약부터 끊으라고 조언했다. 여러 약 중에서도 혈압약과 당뇨약이 대표적이다. 아예 약을 쓰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라, 잘못된 생활습관 때문에 나타나는 증상은 그 습관을 고치거나 개선함으로써 없애야지, 약을 남용하면 오히려 병세를 악화시키고 만성화시킨다는 뜻에서 그렇게 한 말이었다.

 

나는 그 구절을 읽고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이거야. 내가 바로 그런 경우네.”

 

내 혈액이 끈적거리고 더러워지는 건 모두 내가 잘못 먹고 잘못 살아온 탓이라는 반성과 후회가 밀려들었다. 먹는 것부터 바꿔보자, ‘평생을 먹어야 한다’는 혈압약이라고? 어쩔 수 없다. 이젠 끊어버리자. 혈압약은 혈압 수치만 조절할 뿐, 치료제가 아니라 하질 않는가. 이참에 쓰레기통에 버려버리자, 하여, 나로부터 한 움큼의 약은 작별을 고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과일과 채소에는 왜 재배토양의 성분 표시를 하지 않았을까?

 

나는 황성수 박사의 유튜브 방송과 20여 년 전에 나온 『김수경 저, 생식 생생 가이드 77, 여성조선 2001년 10월 호 별책부록』을 참고하면서 삼시 세끼를 현미, 채소, 과일만 먹는 생식(生食)을 선택했다. 막상 생식을 해 보니, 뭐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나는 생식 기간을 6개월로 잡은 뒤, 결과를 그때 보기로 하고, 일체의 육(肉) 고기, 생선, 달걀, 유제품을 입에 대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그게 생식의 전부였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피치 못할 장소에서 나 자신과 주변을 속이고 고기를 몇 번쯤 먹었다. 그럴 때는 죄를 짓는 것 같았지만, 생식의 원칙을 지켜나갔다.

 

생채소는 종류를 가리지 않고 살 수 있는 건 모두 사다가 조리하지 않고 날것 그대로 시험 삼아 먹었다. 특별히 뭐에 뭐가 좋다는 소리를 귀 못이 박힐 만큼 들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야장천(晝夜長川) 그것만 먹지는 않았다. 그저 흔히 구할 수 있는 일반 채소 위주로 염소가 콩깍지 받아먹듯이 주는 대로 먹었다. 하지만 딱 하나, 물에 불린 현미를 한 번 입에 넣을 때마다 50번 이상 씹어먹어야 하는 저작(咀嚼) 과정은 꽤 힘들고 지루했으며, 내가 생으로 먹는 채소나 과일이 과연 안심하고 먹어도 되는 건지에 대한 끊임없이 솟구치는 의심을 해소할 방법이 없었다.

 

어느 날 오후, 나는 신선한 유기농 채소를 사보려고 동네의 친환경 매장에 들어갔었다.

 

“으흠~ 오늘 뭐 신선한 채소가 새로 들어온 게 없을까?”

 

나는 노련한 주부처럼 쇼핑 바구니를 팔에 끼고 채소 냉장 진열대 앞에 서서 뭐 좀 아는 척, 이것저것 만져보며 고르기는 했지만, 천만의 말씀이었다. 채소에 대해 대체로 아는 바가 없던 나는 수십 종의 채소를 어떻게 골라야 좋은 것이고, 어떻게 먹어야 효과적인지 아리송해서 이걸 사야 할지 말아야 할지 도무지 감을 잡지 못하고 헷갈리는 거였다.

 

저걸 어떻게 생으로 먹지? 단호박을 생으로 먹을 수 없지 않은가? 그렇게 먹는 사람도 있다고는 하지만. 그건 익혀 먹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저 뿌리 식물에 붙은 흙은 왜 저렇게 까맣지? 질소 비료가 더덕더덕 붙어 있는 게 아닐까? 뿌리껍질을 벗겨내야 하는 건가? 그럼 영양성분이 달아나지 않을까.... 등등, 겨우 안다는 채소는 상추였다. 어렸을 때 텃밭에서 상추를 뜯어다가 쌈을 싸서 밥을 먹던 기억이 있었다. 진열대에 있는 상추 한 묶음을 꺼내 든 나는 매장 직원에게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

 

“이거 무농약 제품인 걸 알겠는데...어떤 흙에서 재배했다는 표시가 없네요."

 

“흙이요?”

 

매장 점원이 자기에게 시비를 거는 거느냐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네, 흙 말입니다. 이 상추를 어떤 흙에서 재배했다는 정보가 없는데요.”

 

나는 당신이 친환경 매장 직원이니 그런 것쯤은 알지 않겠느냐며 또 물었다.

 

“아유~ 고객님, 그거 무농약 제품인데 그런 것도 못 믿으시면, 세상에 믿을 게 어딨겠어요.”

 

매장 직원은 그런 일로 자기에게 시비를 거냐는 투였다. 무농약이면 좋은 흙에서 난 것인 줄 알아야 하는데 뭔 뚱딴지같은 소리를 지껄이는 거냐며 살짝 콧방귀를 뀌는 것이었다. 은근히 부아가 난 나는 진열대의 상추를 살짝 꺾어서 흰 액즙이 나오는지, 몰래 살폈다. 그게 나온다면 제대로 된 상추일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액즙은 기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그 순간 매장 직원에게 일격을 가했다.

 

“무농약이든 뭐든 흙이 좋아야지요. 무농약이면 뭐합니까, 상추에 있는 하얀 액즙이 안 생기는데....”

 

그 말 뒤에 나는 ‘상추 맛이 풀을 씹는 것 같을 거’라고 쏴붙이려다가 그만, 거기에서 멈췄다. 매장 직원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정, 의심이 들면, 생산자에게 물어보시죠”라고 해서 둘 사이의 대치가 봉합되는 꼴이었으나, 그때부터 나는 무슨 과일 채소든지 ‘재배 토양 이력서’-이런 게 있지는 않지만-를 붙이는 걸 나의 소신이고, 사명인 듯 여기는 습관이 생겼다.“

 

모든 채소와 과일은 어떤 흙에서 키웠는지 소비자에게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라는 규정을 만들고, 농산물마다 흙의 이력에 관한 라벨을 붙이도록 강제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친환경이건, 무농약이 건 저농약이건 가축분 퇴비와 비료로 범벅인 식물을 누가 먹으려 하겠는가? 

 

케이블 채널을 틀면 나오는 『나는 자연인이다』를 나는 거의 외우다시피 한다. 그들의 사연은 각자 달라도, 자연에 가까운 방식으로 채소를 길러 먹고, 약초를 캐어 먹는 걸 보고, 내가 제대로 된 채소, 과일, 그리고 약초를 먹는 것 같은 대리만족을 하기 때문이다.

 

 

건강한 흙은 질병을 예방하는 훌륭한 의사

 

70년대 이후 우리나라 농업은 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녹색혁명, 가뭄과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를 피하고, 지역의 차이를 극복하면서 사시사철 생산이 가능하게 만든, 비닐하우스의 백색혁명, 그리고 기후 위기를 거치는 동안, 각종 환경오염물질과 화학 비료, 농약 성분이 농경지에 침투되고 축적되면서 흙 속의 생태계가 교란(攪亂)을 일으켰다. 다시 말해 흙 속 유기물 함량이 턱없이 부족해졌고, 이를 먹이로 삼는 수억 마리에 달하는 흙 속의 미생물과 소동물, 지렁이 등 토양 생물이 아주 적어지거나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좋은 흙의 유기물 함량이 5~7% 정도라면, 우리나라 농지는 2.5%, 밭은 2%에 그쳐서 사막화 직전 단계에 와 있다. 그러니 우리나라 농경지는 비료와 퇴비가 없으면 농사짓기가 불가능해졌고, 이에 따라 병충해의 발생도 증가해 농약을 치지 않으면 안 되는 농업의 위기 상황까지 다다른 것이다.

 

오래 전, 회사의 텃밭을 일궜던 나는 우리 식구가 먹는 것이니, 농약을 안 치겠다며 배추를 길렀으나, 배추 밑동을 썩게 만드는 병충해로 전량 폐기한 적이 있었다. 그걸 보고, 어머니는 “농약을 치지 않고서는 이제 어떤 농사도 지을 수 없다면서 친환경 농산물이니, 무농약, 로컬푸드 운운하며, 그런 걸 믿는 나를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차시곤 했다.

 

생식하면서 내가 읽은 관련 서적은 20여 권이 넘었다.

 

1. 『약이 되는 우리 풀, 꽃, 나무 1』

2.  『채식 건강법』, 『토종약초 장수법 1』

3. 『식용식물 사전』 『빵의 역사』,

4. 『음식의 제국』

5. 『한방 체질 약선 600가지』

6. 『대한민국 8도 식재 총서』

7. 『사계절 해독 밥상』

8. 『혈액을 맑게 하는 건강 혁명 』 등등

 

그리고 일본 책으로 『萬病に 效く 野草酵素』, 『きれいな血液が 健康をつくる』을 번역하며 읽었다. 문제는 이런 책에 어디에서도 먹기를 권장하는 채소와 과일이 어떤 흙에서 나와야 하는지 밝히고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전부 뭐에는 뭐가 좋다는 식이지, 책에 등장하는 100여 가지의 채소와 과일은 해당 채소와 과일이 자라는데 필요한 건강한 흙의 기준이 제시되지 않고 있었다. 이를테면, 같은 도라지도 밭에서 재배한 도라지와 자연산 도라지는 엄연히 다르지 않은가

 

이처럼 생식하면서 가장 힘든 건 건강한 흙에서 자란 건강한 과일과 채소를 찾는 일이었다. 파 뿌리(대파가 아님)가 당뇨에 좋다는 정보를 일러주면 뭐 하는가? 자연산에 가까운 파 뿌리를 구할 수가 없으니 문제다. 뭐에 뭐가 좋다는, 그 좋다는 이야기만 무성할 뿐, 그 뭣을 어디에서 어떻게 구하는지, 그런 농사를 누가 어떻게 짓는 것인지도 알려주지 않고, 그들이 흙을 어떻게 관리하는지와 같은 정보가 제공되지 않으니, 그 많고 많은 건강 정보가 무용지물이고 헛방이었다.

 

건강한 흙에서 자란 건강한 과일과 채소가 생식하는 사람에게만 필요한 건 아니다. 흙이 죽으면 지상의 생물체는 모두 소멸한다. 건강한 흙을 만드는 사람은 의사가 아니지만, 질병을 예방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방의학으로써의 농업은 이미 의학과 첨단 기술과 융합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질병을 치료해 주는 사람을 인정하지만 예방해 주는 사람에겐 중요한 가치를 두지 않고 있다. 건강한 흙에서 자란 건강한 농산물을 먹으면 정말 건강해지는 데 왜 흙을 살려 건강한 농산물을 생산하는 사람들에게 우리 사회는 인색한 것일까?

 

그렇다면 건강한 흙이란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일까? 윤영무 기자가 간다, 다음에는 유기농업에 정통했다는, 일본 교토대의 니시무라 카즈오(西村和雄, 76세) 교수로부터 건강한 흙 이야기를 들어본다.

 

MeCONOMY magazine January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