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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분석

빈부에 따라 다른 체감도, 현 벌금형제도는 정의로운가?


[M이코노미 조운기자]우리나라 벌금형제도는 피고인의 경제적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총액만을 정해 선고하는 ‘총액벌금형제도’이다. 벌금을 내지 못해 노역장에 유치되는 이들이 한 해 평균 4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있는 자들에게는 가볍고 없는 자들에게는 무거운 현행 벌금형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 대안은 무엇인지 알아본다.


 범죄를 저지른 자에게는 그에 마땅한 형벌이 주어져야 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이는 인류 역사 상의 불문율처럼 여겨져 왔다. 범죄를 저지른 것도 인간이지만 이 죄를 심판하는 것도 인간이라는 점에서 ‘마땅한’ 형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는 역사를 거슬러 계속돼왔다. 실제로 수많은 범죄자들이 자신에게 내려진 형벌의 경중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하곤 했다. 우리도 잘 알고 있는 소설 속 ‘장발장’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빵을 훔쳤다가 19년 형을 살았다. 남의 것을 훔친 것은 분명한 ‘절도죄’이며 죄값을 치러 마땅하지만, 우리는 그를 동정한다. 가난과 배고픔으로 우발적 범죄를 저지른 것에 비해 그가 받아야 했던 처벌이 너무나 가혹했기 때문이다.


1988년, 한 탈주범이 세상에 외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향간을 떠돌며 오랫동안 회자되었다. 돈이 있는 사람은 죄가 되지 않지만, 돈이 없는 사람은 죄가 된다는 이상한 세상에 대한 외침은 오늘까지도 유효한 듯 보인다. 경미한 죄를 저질러 벌금형을 받았지만 이 벌금을 낼 돈이 없어 교도소에 갇히는 사람들이 해마다 4만 명이 넘는다. 죄질이 나쁘거나 위험해서가 아니라 벌금을 낼 형편이 못돼서 교도소에 갇힌 것이다. 범죄를 저질렀으면 그에 마땅한 죗값을 치러야 하지만 우리나라의 벌금형제도는 가난한 자에게는 더욱 가혹하고 부유한자들에게는 너무나 가볍도록 되어 있다.


누구에게나 같은 금액, 총액벌금형제도


우리나라 벌금형제도는 총액벌금형제도라고 하여 범죄를 범해 기소된 피고인의 경제적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법정형의 범위 내에서 일정액의 총액만을 정하여 선고하고 있다. 벌금액은 1995년 형법개정에 의하여 금액을 5만원 이상으로 하며 그 상한에는 제한이 없으나 감경할 때에는 5만원 미만으로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경우, 같은 액수의 벌금형이라 하더라도 피고인이 가지고 있는 재산에 따라 형벌에 영향을 받는 정도가 달라져 형벌효과가 불평등하게 나타날 수 있다. 예를 들어 벌금형으로 선고된 100만원이 누군가에게는 한 끼 식사 값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빚을 져도 해결하기 어려운 금액일 수 있다. 이처럼 범죄인의 경제적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벌금형은 이를 납부할 수 없는 자들에 대한 벌금형의 현금집행률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정해진 벌금은 판결확정일로부터 30일 내에 납입하여야 하고, 납입하지 않는 경우 1일 이상 3년 이하의 기간 동안 벌금 미납자를 노역장에 유치하여 작업에 복무하게 하는 환형처분이 이루어지는데 이를 노역장 유치라 한다. 지난 5년간 벌금을 내는 대신 노역장 환형유치 집행이 이루어진 것은 평균 약 3.4%이고, 2014년의 경우 이러한 사례가 42,871건으로 나타났다. 법원 내부적으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노역장 유치에 따른 1일당 환산금액을 10만원으로 한다는 기준을 마련하고 있으나, 노역장 유치일당의 상한을 제한하는 규정이 포함되지 않아 고액벌금을 선고받은 자와 일반시민의 환형유치 일당의 큰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실제로 최근 한 중견기업 회장이 벌금 249억원을 선고 받았으나 환형유치일당 5억원으로 환산해 노역장 유치기간을 49일로 선고하여 이른바 ‘황제노역’이라 불리며 논란이 된 사건이 있었다. 벌금형은 징역형과 비교하여 비교적 죄질이 가벼운 범죄에 대하여 부과되고 시설 내에 구금하지 않으므로 사회적 제재의 일종으로 분류할 수 있다. 최근 자본시장의 발달과 함께 형벌의 중심이 자유형에서 벌금형으로 이동하고 있는 추세라 한다. 실제로 국회 입법조사처와 법무연수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형벌의 추세에서 벌금형은 적게는 약 30%에서 40% 초반까지 선고되어 벌금형의 비중과 활용이 높아지고 있으며 약식명령사건 중 벌금형이 차지한 비율은 지난 5년 동안 평균 88.3%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적용률이 높아짐에도 불구하고 벌금형에 대한 제도는 빈부에 따른 불평등 문제를 해소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피해를 입는 이들에 대한 문제가 점점 불거지고 있는 것이다.


개인 재산에 따라 달라지는 ‘일수벌금형제도’


국회입법조사처 조규범 입법조사관은 ‘벌금형제도의 문제점과 입법과제’ 보고서를 통해 총액벌금형제도의 불평등한 형벌효과와 노역장 유치일당에 대한 불평등 문제를 지적했다. 그 외에도 벌금형에서 집행유예제도를 불비하고 있는 점, 벌금형 분납과 연납을 인정하지 않는 점, 벌금 미납자에 대한 사회봉사 집행제도를 활용하지 않는 점 등도 현행법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조 입법조사관은 현 총액벌금형제도를 대체할 제도로 외국의 사례를 들며 ‘일수벌금형제도’를 소개했다. 일수벌금형제도란 사회적으로 정당한 벌금형을 선고하기 위해 고안된 제도로 개인의 재산에 따라 벌금액을 다르게 부과하는 제도이다. 범죄인 개개의 사정에 따라 적합한 벌금형을 선고함으로써 형벌의 개별화 이념을 실현할 수 있는 합리적인 형사제재로 평가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그 도입여부가 꾸준히 논의되고 있다.


독일, 핀란드 등 유럽의 많은 나라들은 일수벌금제를 채택하고 있는데 하루의 소득을 벌금으로 회수하는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죄의 경중에 따라 죗값을 치를 일수를 정하고 범죄자의 개인적·경제적 사정을 감안해 1일 정액을 정해 총벌금액을 정하는 것이다. 실제로 핀란드의 노키아 부사장인 안시 반요끼는 50 km/h 구간에서 75km/h로 주행해 벌금 11만6천유로, 우리 돈으로 약 1억 8천만원을 구형받았으며 육가공식료업체 상속자인 유씨 살로노야는 40km/h 구간에서 80km/h로 주행하다 벌금 17만유로, 우리 돈으로 약 2억6천만원의 벌금을 내 국민들의 호응을 받았다.


현대판 장발장들을 구제하기 위해


우리나라 벌금형제도에 대한 문제의식은 시민사회에서 부터 시작되었다. 2009년 인권연대는 43,199명이라는 숫자의 사람들이 돈이 없어 더 무거운 형벌인 노역장 유치에 처해진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43,199위원회를 구성했다.


“43199위원회는 더는 정부와 국회와 법원의 ‘선처’만을 기다리고 있을 수 없어 오늘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적어도 가난이 곧 교도소인 사회를 조금이라도 고쳐보고자, 소득 불평등이 곧 형벌 불평등인 사회를 넘어서보고자 ‘무담보’, ‘무이자’ 인간신용은행을 시민들이 나서서 설립키로 한 것입니다.” (장발장 홈페이지 소개 글)


43,199위원회는 이후 시민들의 기부를 바탕으로 돈이 없어 교도소에 갇힌 사람들을 위해 신용조회 없이, 무담보 무이자로 대출을 해주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은행인 ‘장발장 은행’을 설립하게 된다.


이 장발장은행은 지난 2019년까지 총 18번의 대출 심사를 진행해 302명에게 4억7천만원이 넘는 돈을 대출해 주었다. 장발장 은행은 현 총액벌금형제도의 해악을 지적하며 일수벌금제를 도입하고 현행법의 미비점을 개선·보완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또한 경찰청은 올 3월부터 가벼운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한 처벌을 줄여주는 ‘경미범죄 심사위원회’를 전국 경찰서의 5분의3 수준까지 확대 시행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3월부터 전국 17개 경찰청별로 경찰서 1곳씩 시범 운영한 ‘경미범죄 심사위원회’는 절도, 도박, 사기, 폭행, 재물손괴 등 생활고에 시달려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지만 잘못을 뉘우치는 사람들을 심사위원회가 심사해 피해 정도, 죄질, 기타 사유에 따라 처분을 감경해 구제해 줬다. 현대판 ‘장발장 구하기’로 불리며 긍정적인 반응을 얻자 올해 예산 4억원을 확보해 정식 운영하게 된 것이다.


「형사소송법」개정안… 벌금형 집행유예, 신용카드 납부 가능


지난해 12월9일,「형사소송법」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 소기의 성과를 이뤄냈다. 이번 개정안으로 500만원 이하 소액의 벌금형에 대해 범행경위나 피해 정도 등 정상을 참작하여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있도록 하고, 벌금을 한 번에 납부하기 어려운 경우 분납을 신용카드로 납부할 수 있게 된다.


과거 벌금형보다 무거운 형벌인 징역형 또는 금고형에 대해서만 집행유예가 인정되었던 것에서 이번 개정안을 통해 일보전진 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죄를 지은 사람들에 대해 지나치게 온정주의적 태도를 보이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죄를 짓지 않으면 될 것 아니냐’, ‘죗값을 치러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총액벌금형제도의 대안으로 여겨지고 있는 ‘일수벌금형제도’에 대해서도 단점들이 지적되고 있다. 피고인의 경제적 능력에 대한 정확한 조사와 확정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우며 범죄에 의하지 않은 일상생활을 통해 축적한 부에 대해 희생적 평등을 요구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합의가 우선 시 돼야


벌금형제도에 대한 개선은 형벌제도가 가져야 할 정의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우선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소년소녀 가장이 우발적으로 면허증 없이 오토바이를 몰다 벌금형에 처해져 어쩔 수 없이 노역장에 유치되고, 한 때의 실수로 물건을 훔쳤다 유치장에서의 경험과 주변의 낙인효과로 인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영위하지 못하게 되어 이러한 범죄가 반복되는 안타까운 사례들은 온정적 차원을 떠나 우리사회의 ‘정의’가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한다.


MeCONOMY Magazine February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