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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셰익스피어가 우리나라 정치 연설문을 쓴다면(2)

좋은 말이 성공을 만든다(5편)

셰익스피어만큼 언어를 매혹적으로 그리고 아름답게 사용한 작가는 없을 것이다. 그가 지닌 어휘력은 다른 어느 작가보다 방대하다. 멕베스, 햄릿, 줄리어스 시저를 공부하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를 한층 세련되게 연마할 수 있으며 그 폭도 한층 더 넓히게 된다. 연설문에 들어가 보자. 


브루투스 일파를 치켜세우는 노련하고 교묘한 언어들 

 

연단에 오른 안토니가 말했다.
“브루투스는 고매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그들도 모두 고매하신 분들입니다.”


그의 연설 시작에서 주목할 만한 게 있다. 처음부터 논쟁을 꺼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드러나지 않게 차츰 차츰 시저에 관한 몇 가지 사실을 하나씩 군중에게 흘린다. 시저가 포로들의 몸값으로 어떻게 국고를 채웠는지, 그가 어떻게 가난한 자들과 함께 울었는지, 어떻게 왕관을 거절했으며, 어떻게 유언을 통해 자기 재산을 사회에 환원시켰는지 등의 사연들을 들려준다. 그는 이 같은 여러 사실을 열거하고 군중에게 질문을 던지며 그들이 스스로 결론을 끌어내도록 만들었다. 그가 제시한 증거는 새로운 어 떤 것이 아니라 군중-그들이 잠깐 잊고 있던 어떤 사실이었다.  


“저도 여러분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말할 뿐입니다.” 
논쟁보다 군중이 잊고 있던 사실을 증거로 제시한다 
안토니 친구들, 로마인들, 동포 여러분,

그대들의 귀를 빌려 주십시오. 

나는 시저를 찬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매장하러 왔습니다. 

사람이 행한 악행은 그가 죽은 뒤에도 살아남지만 

선한 행실은 흔히 그의 뼈와 함께 땅에 묻힙니다. 

시저도 예외일 수 없겠지요.

고매한 브루투스는 여러분에게 시저가 야심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만약 그게 사실이었다면 그것은 큰 잘못이었고 
시저는 참혹하게 그 값을 지불했습니다. 
저는 브루투스와 나머지 분들의 허락을 얻어-브루투스는 고매한 분이고 나머지 분들도 모두 그러하므로-시저의 장례식 에서 추도사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저의 친구였고, 제게 신실했고 공정했습니다. 

그러나 브루투스는 그가 야심이 있었다고 합니다. 
브루투스는 고매하신 분입니다. 
시저는 많은 포로들을 로마로 끌고 왔고
그들의 몸값으로 국고를 채웠습니다. 
이것이 시저의 야심이었습니까? 
가난한 자들이 울 때 그분도 같이 울었습니다. 
야심은 좀 더 냉혹한 성정에서 나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브루투스는 그가 야심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브루투스는 고매한 분입니다. 
루퍼컬(Lupercal) 축제 때 여러분도 모두가 보셨습니다. 
제가 시저에게 세 번 왕관을 바치는 것을, 
그리고 그가 세 번 모두 물리치는 것을 말입니다. 이것이 야심 입니까?
그러나 브루투스는 그가 야심이 있다고 말합니다. 
분명히 브루투스는 고매한 분입니다. 
저는 브루투스가 한 말을 반박하려는 것이 아니라, 제가 아는 바를 말하려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여러분 모두는 한 때 그 분을 사랑했고,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 습니다. 
그렇다면 그 분을 애도하는 일에 주저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 판단력이여. 그대는 잔인한 짐승들에게 도망가 버리고 
인간은 이성을 상실했구나! 
아! 날 이해해 주십시오. 
내 심장은 시저와 함께 저기 관 속에 누워있어 
그것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 좀 쉬어야겠습니다. 

 

시저의 양피지 유서를 증거로 제시하며 군중을 압도

 

시민1 - 그의 말에 확실히 일리가 있는 것 같다
시민2 - 사실, 사태를 냉철하게 보면 시저가 참 억울하게 당했 지.
시민3 - 그렇지 않소 나리들? 난 시저 대신에 더 잔인한 자가 올까 두렵네.
시민4 - 저 사람 말 못 들었어? 그는 왕관을 거절했어. 그걸 보 면 틀림없이 그는 야심이 없었다고.


시민1 - 만일 그게 사실로 밝혀지면 누군가 호되게 대가를 치러 야겠지.
시민2 - 불쌍한 사람 같으니, 울어서 눈이 불처럼 새빨개졌네. 
시민3 - 로마에 안토니보다 고결한 사람은 없지.
시민4 - 자, 더 들어보자고, 안토니가 다시 말을 시작했어. 


안토니 어제만 해도 시저의 말은 천하를 호령했지만 
지금은 저렇게 저곳에 누워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비천한 사람도 그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습니 다. 
오! 여러분 내가 만약 여러분의 심장과 마음을 충동질하여 
반란과 폭동을 일으키게 한다면
나는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를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그들은 모두 고매한 분들입니다. 

 

저는 그분들을 욕되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고매한 분들을 욕되게 하느니 차라리  
저는 죽은 사람과 저 자신과 여러분을 욕되게 하는 쪽을 택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시저의 인장이 찍힌 양피지가 있습니다. 
이것은 그분의 유서로 제가 그의 벽장에서 발견했습니다. 


(안토니는 시저의 유서를 제시하여 군중들이 시저의 유서를 읽어달라고 외치게 만들고 군중들의 복수를 유도한다. 해당 연설문은 다음 호에 이어짐) 
 


※ 필자 주) 시오노 나나미의 장편 『로마인 이야기』에 의하면 줄리어스 시저는 로마에서 가장 빚을 많이 진 사람이었고, 가장 바람을 많이 핀 사람이었다. 빌린 돈으로 공부를 하고 옷을 잘 차려입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잘 줘 인기가 많았다. 바람을 피워도 상대의 원망을 산 적이 없다고 한다. 왜냐면 보상을 잘해 주고 뒤를 잘 보살펴 주었기 때문이라나. 


줄리어스 시저는 라틴어로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Gaius Julius Caesar BC 100년 7월 12일~AD 44년 3월 15 일)이다. 자식을 가지고 싶었던 그는 이집트에 머무는 동안 클레오파트라와 결혼하여 둘 사이에 아들을 가졌다. 그가 암살되지 않았다면, 그의 아들이 로마 황제가 되고 클레오파트라는 동방을 통치하지 않았을까?  


시저는 명문가이지만 세력에서 밀린 집안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16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첫 번째 결혼을 한다. 민중파와 원로원파의 참혹한 살육현장을 목격하며 성장했 다. 이혼을 명하는 원로원 파 술라의 명령을 거부하고 국외로 도주한다. 23세에 잠시 로마로 들어와 변호사로 개업했으나 실패했고 술라파의 추격을 피해 다시 국외로 도주해 목숨을 유지한다.

 

7년간의 도피생활을 한 그의 20대는 ‘때를 기다리는 시기’였으며, 27세에 제사장에 임명된다. 30세에 회계감사관으로 선출되면서 관직생활을 시작하고, 35세에 안찰관 취임, 47세에 최고 제사장에 선출, 38세에 법무관에 취임한다.

 

마흔이 되던 해에 폼페이우스, 크라수스와 삼두 동맹을 맺는다. 41세에 로마 최고 관직인 집정관에 선출되고, 42세에 갈리아 총독으로 부임하여 8년간 갈리아 전쟁을 치른다. 이 전쟁의 승리로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르게 된다. 갈리아 전쟁 후에 벌어진 5년간의 내 전에서 승리자가 되면서 로마 제일의 권력자가 되지만 원로원 회의장에서 암살자들에게 살해되고 만다. 


시저(Caesar)는 독일에서는 카이저(kaiser), 러시아에서는 차르(czar) 라 해서 모두 황제를 뜻한다. 황제 중에서도 실권을 장악하고 마음껏 휘두르는 전제군주나 독재자에게 이러한 호칭을 붙인다. 이 호칭은 실은 시저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시저는 황제는 아니었다. 


그는 고대 로마를 대표하는 뛰어난 군인이자 정치가, 문필가, 웅변가다. 그 자신이 쓴 「갈리아전기」, 「내전기」는 간결한 문체와 당시의 형세와 세력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라틴문학에서도 손꼽히는 작품이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장군으로 꼽히는 그가 자신의 군사적 업적을 가감없이 들려준다. 「갈리아전기」는 시저가 기원전 58 ∼51년에 걸쳐 갈리아를 정벌하면서 자신이 이룬 업적을 객관적으로 서술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