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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살아있는 모든 것에는 존재의 의미가 있다

『흙의 반란이 시작됐다 7-1』

 

무성한 풀은 흙을 건강하게 가꾸는 유기물

 

흙은 유기물로 키우는 것이다. 그러면 흙은 살아난다. 아니 원래 살아 있던 흙을 더욱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 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휴경 밭을 예로 들어 보자. 풀이 무성하다는 것은 흙 위든 흙속이든 유기물이 듬뿍 보급되고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자연이 회복되어 흙이 비옥해지고 있다는 증거다. 이것을 보고 배우면 흙을 살릴 수 있다. 그렇다고 유기물을 보급하면 당장 효과를 보고 흙이 살아난다는 말은 아니다. 유기물에 따라서 분해되기 쉬운 것, 
분해되기 어려운 것이 있어서 그렇다.

 

흙에 들어온 유기물을 분해하는 주인공은 흙속의 미생물이나 지렁이와 같은 동물이다. 이들은 질소를 먹고 몸을 튼튼하게 키워서 흙에 들어온 유기물을 효율적으로 분해할 수 있다. 만약 흙속에 들어온 유기물 속에 질소가 적게 들어있다면 흙속의 미생물과 동물이 흡수할 질소가 충분히 못하므로 몸을 크게 만들지 못할 것이고, 그러면 이들은 유기물을 완벽하게 분해할 수 없게 된다.

 

이런 흙에서 자라는 작물은 영양실조를 일으켜 잎이 누렇게 된다.  밀짚은 흙에 넣으면 수년 동안 질소를 방출하지 않다가-다시 말하면 밀짚은 서서히 분해되면서 필요한 질소를 흙으로부터 가로채다가-7~8년이 지나면 비로소 질소를 방출해 작물에 영양분을 골고루 전할 수 있다. 이처럼 질소가 나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볏짚은 2년, 톱밥은 30년이다. 그렇지만 건조한 소똥, 볏짚 퇴비 등은 질소를 방출하면서 서서히 분해된다. 똑같은 볏짚이라도 퇴비화하면 질소 방출이 빠른 이유는 일반 볏짚보다 질소가 많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유기농업에 꼭 필요한 2가지 법칙 


니시무라 기즈오 교수는 예전에 유기농업을 하는 독농가(篤農家)로부터 배운 두 가지 법칙을 제시했다. 


제1법칙 : 나무는 나무에게 돌려주고 풀은 풀에게 돌려준다 

 


과수(果樹)와 같이 천천히 자라는 영년(永年) 작물에게는 천천히 분해하는 원래 나무였던 것을 유기물로 만들어 되돌려 주는 것이 좋다. 벼, 보리 등과 같은 곡류, 가지, 토마토, 양배추 같은 채소류에는 풀을 유기물로 만들어 주는 것이 좋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유기물의 종류에 따라 흙 속 미생물과 동물이 분해를 잘 하는 것이 있고 잘 못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나무를 잘 분해하는 버섯류가 있는가 하면 낙엽을 갉아 먹으면서 단단한 잎맥만 남기고 먹는 노래기가 있다. 

 

 

소나무의 침엽(針葉)안으로 기어들어가 부드러운 부분을 우물우물 갉아 먹으면서 터널을 뚫는 진드기가 있다. 그리고 작은 낙엽을 흙의 구멍 속으로 억지로 끌고 들어가 천천히 먹는 지렁이와 곰팡이가 엉겨 있는 단백질이나 당을 분해하는 데 관여하는 박테리아도 있다. 

 

박테리아에도 똥(糞)을 먹는 것과 똥에 정착해 살면서 분해하는 것이 있다. 또한, 지렁이, 진드기, 톡토기류(collembola)같은 작은 토양 동물의 죽은 시체를 분해하는 박테리아도 있는데 이처럼 흙속의 생태계는 서로 먹고 먹히는 관계를 유지하다 결국 모두가 다시 흙으로 되돌아간다. 

 

제2법칙: 살아 있는 모든 것에는 존재의 의미가 있다 


유기물을 흙에 넣었다고 해서 유기농업이 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같은 유기물을 계속 넣는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니다. 그런 흙에서는 그와 같은 유기물을 좋아하는 생물만 살아갈 것이다. 농약이나 화학비료, 미숙성 퇴비를 계속해서 뿌려대는 흙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 흙은 오래가지 않아서 산성화 되고, 병충해가 들끓어 농약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특히 비닐하우스에서는 염류장애가 일어난다. 이를 씻어 내기 위해 비닐하우스 흙바닥을 흥건하게 홍수 때처럼 물에 잠기게 한다. 그러면 흙속으로 물이 침투해서 흙속의 염류성분이 씻겨 내려간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염류장애를 없애고 다시 작물을 심어봤자 흙속의 각종 성분이 물에 씻겨 내려간 뒤라, 제대로 된 흙속의 영양성분을 흡수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다. 식물 각자 고유하게 가지고 있는 맛과 향을 낼 수도 없게 된다.   

 

니시무라 가즈오 교수는 소비자들과 교토(京都)시 부근의 유기재배 농가 주변에 가서 논두렁 흙부터 냄새를 맡았다. 이 흙에서는 흙에서 나오는 아주 향긋한 냄새가 났다. 유기농 밭의 흙은 냄새가 조금 강하긴 했지만 역시 좋은 냄새가 났다. 그러나 농로를 사이에 두고 농약과 화학비료를 뿌려대는 밭에서는 흙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 이유는 농약과 화학비료로 흙속의 생물들이 죽어버린 탓이다. 흙을 살리는 원칙은 그러므로 어떻게 하면 수많은 흙속 생물들이 잘 자라게 할 수 있을까를 궁리하는 것이다. 


풍부하고 복잡한 흙속 생물들의 세계-흙의 생태계가 활성화 되면 병원균이라든가, 뿌리에서 나오는 분비물을 빨아 먹으며 나쁜 짓을 하는 선충(線蟲)의 숫자까지 감소한다. 없어지는 게 아니라 작물에 해를 끼치지 않을 만큼 줄어든다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늙은 소나무 잎만 골라먹는 송충이, 송충이 똥은 소나무의 비료공장


초원이나 숲, 산림을 보시라. 그런 곳의 흙속에 병원균이나 해충이 무수히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 때문에 어느 날 갑자기 숲의 식물이 말라 죽거나 하는 법은 없다. 병원균이니 해충이니 하는 나쁜 이미지의 단어는 인간이 편의적으로 만들어내 붙인 것이다.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병원균이니 해충이 아니었다. 흙의 생태계에서는 그들 나름의 존재의의와 의미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소나무 잎을 먹고 사는 송충이 예를 들겠다. 송충이는 봄부터 자라는 어린잎을 절대로 먹지 않는다. 오로지 지난 해 자란 잎, 즉 2년 생 잎을 먹는다. 사실 늙은 소나무 잎은 광합성 활동을 거의 하지 않으니, 어찌 보면 어린잎이 만든 양분을 얻어먹으며 더부살이를 하고 있다.

소나무 입장에서 보면 나이든 잎은 성장하는데 짐이 되는 셈인데 송충이가 이를 해결해 주니, 한편으로 여간 고마운 게 아니다. 


소나무 입장에서 볼 때 송충이가 존재하는 의미는 그들이 늙은 잎을 먹고 똥을 싸준다는 것이다. 똥은 흙에 떨어지면 잘게 부수어지고 분해가 시작되는 일종의 비료 공장인 셈이다. 그렇지만 늙은 잎은 좀처럼 흙에서 분해되지 않는다. 그래서 소나무 밑에는 떨어진 잎들이 수북이 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소나무와 송충이는 서로가 필요한 존재다. 이런 사실을 서로 의식하고 있는지 아닌지 모르지만, 인간이 이름을 붙인 병충해든 선충이든 모든 생물은 나름의 존재하는 의미와 의의를 가지고 있다. 특히 흙속 생태계가 그러하다. 인간이 흙속 생태계를 훼손하는 순간, 식물의 자생력은 떨어져 비료와 농약 없이는 자랄 수 없게 되며, 인간이 필요로 하는 영양성분도 함유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