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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분석

선거보도 경종 울린 폭스뉴스 명예훼손 사건

 

현대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가장 큰 특징을 꼽는다면 극심한 정파 대결과 과열된 선거, 페이크 뉴스의 기승이라고 할 수있다. 가장 극단적인 사례가 미국 정치판이고 한국도 이를 닮아가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4월 18일 미국 델라웨어 주 윌밍턴 법정에서 폭스뉴스 방송사를 상대로 한 명예훼손 사건이 양측의 합의로 재판 시작 직전에 종결됐다.

 

폭스뉴스가 명예훼손 제소자인 도미니언 보팅 시스템(Dominion Voting System)에게 지급하기로 한 합의금은 7억8천7백만 달러로, 미국 역사상 최대의 명예훼손 배상금이다.  

 

도미니언 보팅 시스템 사는 2002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설립됐으며 나중에 미국 덴버로 본부를 확장했다. 이 회사는 투표 머신을 포함해 전자투표와 개표를 위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공급해왔으며 세르비아에 개발팀을 두고 있다.

 

도미니언사는 캐나다에서 신뢰를 얻자 그것을 바탕으로 미국으로 확장한 것으로 보인다. 

 

투표 부정 음모론에 휘말린 2020년 미국 대선 때는 설립 한지 20년 가까이 되는 회사로 상식적으로 볼 때 도미니언 사가 투표 기계를 조작할 동기와 가능성이 없었다.

 

도미니언사의 투표 머신이 트럼프 대통령을 찍은 표를 없애버리거나 일부를 바이든 후보 쪽으로 변경시켰다는 주장은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극우단체인 큐어넌에서 퍼져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변호사들, 그를 열렬히 지지하는 유명 인사들이 ‘선거를 도둑맞았다’는 식으로 투표 머신 조작설을 지속적으로 퍼뜨렸다. 또 극우 매체들과 SNS들이 이 루머를 열심히 퍼 날랐다.

 

11월 3일 대선 투표가 있었는데, 이런 소문들이 계속 퍼지자 11월 12일 미국 선거기관들과 사이버와 인프라 보안 정부기구, 투표산업 관계자, 전문가들이 도미니언사와 스마트매틱사 등 대선에 사용된 2개사의 전자투표 머신과 시스템을 검증하고 전혀 문제가 없음을 공식적으로 확인했다. 

 

이런 와중에서 폭스뉴스는 투표조작 음모론을 주장하는 트럼프 측 인사들을 출연시키는 등 음모론 확산 프로그램을 여러 차례 내보낸다.

 

폭스뉴스는 잘 알려진 대로 보수층을 기반으로 사세를 키워온 방송사다. 폭스뉴스는 보수성향의 시청자 들을 잡기 위해 애초부터 근거가 희박하고 나중에 사실무근임이 정부기관과 전문가 그룹에 의해 밝혀졌음에도 음모론을 방송에 내보냈다.

 

폭스뉴스는 이듬해 1월 즈음에 음모론 방송을 중단했으나 그때는 이미 늦었다. 도미니언사와 스마트매틱사는 그해 3월 근거 없는 음모론을 퍼뜨려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었다며 폭스뉴스와 다른 극우매체들, 트럼프측 인사들을 대상으로 소를 제기했다.

 

이 음모론을 들었을 때 조금만 합리적 사고를 할 수 있으면 충분히 의심을 품을 만한 데도 미국의 일부 정치인들과 변호사들, 방송인들은 그대로 전파하거나 심지어 새로운 소문을 덧붙여 부풀리기도 했다. 

 

 

전자투표 시스템은 찬성표와 반대표, 무효표를 덧셈만 해도 되는 아주 간단한 소프트웨어와 기계일 것이다. 초보적인 계산 프로그램일 터이므로 금방 조작 여부를 검증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캐나다와 미국에서 오랫동안 투표시스템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내고 있는 회사가 왜 위험하기 그지없는 조작을 시도하겠는가, 금방 조작 여부가 탄로 날 수 있는 도박을 감행할 사업자의 동기가 부족하다.

 

11월 13일 전문기관 들이 투표 시스템에 문제가 하등 없다는 확인을 했으면 음모론을 전파했던 방송사와 언론사들은 즉시 중단하고 사과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수억 달러에 달하는 배상금을 물지 않았을 것이고 소송을 당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터이다.  

 

트럼프 대통령 캠프 내에서도 2020년 11월 선거 직후 투표 조작설이 터져 나오자 내부적으로 검토한 결과 근거 희박한 것으로 결론을 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11월은 물론이고 12월에도 부정 선거 주장을 되풀이하고 분노를 표출했고 급기야 1월 6일 바이든 대통령직 승인을 선언하는 의회를 트럼프지지 군중이 점령하는 대사건이 벌어졌다.

 

폭스뉴스의 방송이 의회 폭거의 원인중의 하나라고 주장해도 할 말이 궁색할 것이다.

 

2016년 트럼프를 백악관의 주인으로 당선시킨 일등공신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폭스뉴스는 2020년 대선에서도 그를 밀어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음모의 진실성을 의심했으면서도 거짓 방송을 한 것은 방송사로서 책무를 망각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폭스뉴스는 투표 조작설을 전달했을 뿐이라는 논리를 폈다.

 

미국법률과 한국법률은 모두 방송사와 언론사가 진실여부를 확실히 알지 못한 상태에서 그 사안이 사회적으로 거론될 경우 보도할 자유를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조작설이 의심되면 그것을 검증하는 노력을 최대한 기울이고 조작이 의심되는 것에 대해선 단정적인 사실인 양 보도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조작설을 주요한 내용으로 다루는 기사를 쓰거나 방송을 할 경우에는 반드시 반대되는 주장도 함께 전달해서 시청자와 독자들의 바른 판단에 도움을 주도록 해야 한다. 

 

일반 사람들은 유명 방송 앵커가 방송에서 말한 것은 무엇이든 사실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더욱이 보수성향의 폭스뉴스에서 스타 방송인이 자신의 인기 프로그램에서 트럼프측 변호사를 불러 투표 조작설을 마음대로 말하게 내버려두면 보수 성향의 시청자들은 진실로 받아들인다.

 

폭스뉴스의 간판 호스트인 터커 칼슨은 투표 조작설에 관련해 자신의 프로그램에서 20회 이상 방송했다. 

 

도니미언사의 소송 자료에 따르면 칼슨은 방송하지 않을 때는 조작설 주장에 대해 ‘모순되고 제정신이 아닌 것’이라고 되풀이 말했다고 한다. 이 발언은 호스트가 조작설을 의심하고 있었음에도 방송을 계속한 것이 되므로, 방송사의 명예훼손죄에 해당되는 ‘사실상의 악의(actual malice)’가 성립된다. 

 

또 다른 유명 호스트인 숀 해니티도 투표 조작설을 앞장서서 퍼뜨린 트럼프 변호사 시드니 포웰을 출연시켰다.

 

숀 해니티는 단1초도 조작설이 진실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사석에서 말했다고 한다. 폭스뉴스의 임원과 내부 직원들은 조작설을 의심하는 메시지를 주고받았으며 방송 책임자들에게 거듭 경고했으나 무시된 것으로 나타났다.

 

폭스뉴스의 모회사인 폭스 코퍼레이션의 루퍼트 머독 의장도 음모 설에 대해 믿지 않았던 것으로 증언에서 밝혀졌다. 이와 같은 텍스트와 이메일, 증언들을 종합해 볼 때 폭스뉴스 방송책임자들과 호스트들은 조작설을 스스로 의심했음에도 방송을 상당 기간 강행한 사실이 인정됐던 것이다.

 

 

시청률과 진실

 

그러면 왜 사실이 아닐 것이라는 의심이 있었는데도 방송을 계속 했는가. 폭스뉴스 경영진과 방송 관계자들은 한 마디로 시청자들이 다른 보수성향의 경쟁사에게 뺏길 것을 두려워한 것으로 드러났다.

 

막대한 보수를 받으며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방송 호스트가 갑자기 입장을 바꾸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방송사와 스타 방송인은 시청률과 진실 사이에서 전자를 내치지 못하고 말았다. 

 

도미니언사의 소송서류는 무려 443페이지에 이른다. 도미니언측 변호사들은 증거 조사에 폭스뉴스의 협조를 받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고, 폭스뉴스 스태프들에게 3,600여 통의 이메일과 텍스트를 보냈다.

 

이렇게 2년 넘게 집요하고 치밀하고 광범위한 증거 수집 끝에 ‘사실상의 악의(actual malice)’를 갖고 폭스뉴스가 방송한 사실을 밝혀냈다. 이 사건을 담당한 판사는 투표 시스템 조작설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은 너무나 명백하다고 밝혔다. 

 

폭스뉴스는 재판을 진행할 경우, 자사 프로그램의 호스트들과 경영진, 특히 루퍼트 머독 의장 등이 증언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었다. 명백히 사실이 아님을 알면서도 방송을 강행한 사실을 재판정에서 밝히는 상황이 연속된다면 폭스뉴스의 간판을 내릴 만큼 엄청난 타격이 예상됐던 것이다.

 

재판 시작 직전 거액의 합의금을 내고 발표한 성명에서 폭스뉴스는 끝내 국민과 시청자들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폭스뉴스는 도미니언 사건으로 끝난 게 아니다. 또 다른 투표 머신 회사인 스마트매틱사의 27억 달러의 손배 배상 명예훼손 건이 기다리고 있다.

 

도미니언사는 투표조작설을 퍼뜨린 두 개의 보수성향 매체들과 트럼프측 변호사들에 대한 소송을 계속할 것으로 알려졌다. 폭스뉴스에서 투표조작설을 방송한 터커 칼슨은 배상금 합의 후 일주일이 지나서 폭스뉴스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정치인의 근거 없는 발언 인용보도, 검증 노력 필요

 

한국 언론의 보도관행은 정치인이 근거가 희박한 발언을 하면 당연한 듯이 인용 보도를 하고 사실 여부의 검증을 소홀히 한다. 이번 폭스뉴스 사건에서 보듯이 근거 없는 보도로 인해 피해를 본 측이 언론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면 손해배상금을 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의 피해자들은 정치인과 언론사를 두려워해 소송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한국에서 용기 있는 피해자가 언론사를 상대한 무책임한 인용보도 반복하면서도 진실 검증을 게을리 했을 경우 ‘사실상의 악의(actual malice)’가 없었다는 변명이 통할 수 있지 의문이다.

 

폭스뉴스 사건은 한국 언론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시사 토론 프로그램과 유튜브 방송을 보면 특정 출연자의 일방적 주장을 반복적으로 내보내는 경우가 많은데, 이 또한 소송으로 비화할 경우 피해자에게 유리한 판결이 날 것으로 예고된다.

 

우리나라 시사 다큐 프로그램들도 객관적이고 심층적인 취재가 부족한 가운데 반대 측 증언이 부실하는 등 균형을 잃은 주장으로 일 관된 내용들이 많다. 온갖 음모설을 퍼뜨리고 재임 시 탄핵소추를 두 번이나 당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시 내년 대선에 나서겠다고 하고 공화당 후보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미국 민주주의 정치 판이 갈수록 우스꽝스럽고 기묘하고 걱정스러운 난센스(Nonsense)가 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도 내년 4월 10일 국회의원 선거가 있다. 근거 없는 가짜 뉴스가 고개를 들까 걱정된다. 가짜뉴스는 검찰의 단속보다는 언론의 자정노력이 중요하다. 또 정상적인 언론들을 후원할 수 있는 정책적 아이디어가 필요해 보인다.

 

 

MeCONOMY magazine April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