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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분석

계속되는 아동학대 사망사건…근본 대책 필요하다

- 지난 6월 ‘캐리어 아동학대 사건’으로 전국민적 분노
- 아동학대처벌법·민법 등 친권 제한 조치 가능하나 실효성 의문
- 헌법에 아동 권익 구체적으로 명시할 필요

 

지난 6월 1일 일명 ‘캐리어 아동학대 사망사건’이 알려지면서 국민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 훈육을 이유로 9세 남아를 여행용 캐리어에 7시간 넘게 가두어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다. 우리 사회는 이전에도 아동학대 사건이 일어나면 똑같이 분노했지만, 비극은 반복되고 있다. 물론 아동학대 관련 법률의 제정,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설치, 경찰의 수사의무 제도 등을 도입했지만 근절되지 않고 있다.

 

아동학대의 근본에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 설정에 있다. 부모의 권리와 자녀의 권리가 상호 힘의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관점보다는 자녀에 대한 부모의 권리를 절대적인 것으로 인식해왔다. 이는 부모와 그 자녀의 최상의 이익(best interests of the child)이 서로 일치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천륜으로 맺어진 부모-자식 관계는 항상 호혜적일 것이라는 가정하에 부모의 보호 아래서 자녀의 최상의 이익이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상식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부모의 보호와 관심, 양육과 훈육의 이름으로 폭넓게 용인됐던 자녀에 대한 부모의 통제권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제도적인 변화를 거쳐 왔다. 1989년 ‘유엔아동권리협약’ 제9조제1항은 부모와 함께 살 아동의 권리에 관해 규정하면서도 부모와 분리되는 것이 아동의 최상의 이익일 때는 법률과 절차에 따라 분리조치 해야 한다고 함을 규정하고 있다. 또 이러한 결정은 부모의 학대 및 방임과 같은 특정한 사안에 따를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아동학대처벌법·민법 등 친권 제한 조치 가능


우리나라는 2014년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아동학대처벌법)을 제정하며 아동학대를 분명한 범죄로 규정했다. 아울러 피해 아동에 대한 보호절차, 그리고 아동학대행위자에 대한 보호처분을 규정했다. 학대로 아동이 중 상해를 입은 경우, 또는 상습적으로 아동을 학대한 경우 검사는 아동학대처벌법 제9조에 따라 친권상실 선고를 청구해야 한다. 더 나아가 법률 개정으로 10월 1일부터는 검사가 청구하지 않을 경우 시·도지사 또는 자치구의 구청장은 검사에게 친권상실 선고 청구를 요청할 수 있다.

 

민법 제924조에서도 “부 또는 모가 친권을 남용하여 자녀의 복리를 현저히 해치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를 친권상실 또는 친권일시정지의 요건으로 하고 있다. 또 민법 제942조의2는 “친권자가 친권을 행사하는 것이 곤란하거나 부적당한 사유가 있어 자녀의 복리를 해치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를 친권의 일부 제한 선고의 요건으로 하고 있다.

 

 

통계조차 제대로 잡히지 않는 현실

 

이처럼 법률적으로는 친권을 제한하고 이를 통한 아동학대를 막을 수 있을 것 같지만, 현실은 통계부터가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아동학대를 사유로 한 친권 제재 현황은 별도로 집계되지 않아 현황을 파악할 수조차 없다. 다만 민법 제924조, 제924조의2, 제925조6), 제926조 등에 따른 친권의 상실, 일시정지, 일부제한 및 그 실권회복의 선고에 대한 통계자료를 한꺼번에 관리하고 있을 뿐이다.

 

보건복지부와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에 따르면 2018년 발생한 아동학대 사례는 2만4,604건이고, 같은 해 친권 제재 및 회복 선고는 총 103건이다. 문제는 이 103건에는 친권 제재 선고 건수뿐 아니라 실권 회복 선고 건수까지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친권 제재 현황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음은 물론, 아동학대를 사유로 한 친권 제재에 대해서는 더욱 알 수 없는 형편이다.

 

친권 제재 관련 규정의 한계도 있다. 부모의 학대가 외부에 알려져 기관이 개입한 이후에도 아동이 결국 사망한 사례를 보면 ‘부모의 반성’, ‘데리고 가서 잘 키우겠다는 부모의 요청’, ‘열심히 교육받은 부모’, ‘친모의 가정 복귀 신청’이 있다면 아동을 다시 학대 부모에게 넘겨준다는 공통점이 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전문성 강화와 안정적 재원 마련 등의 대책을 마련하더라도 과연 아동학대가 근절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민법의 친권 제재를 규정도 현실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다. 김상용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논문 ‘아동학대방지와 피해아동보호를 위한 친권법의 개정의 연구’에 따르면 친권의 남용을 ‘적극적으로 친권을 행사하거나 소극적으로 친권을 행사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고 있다. 즉 친권의 남용이란 친권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본래의 취지 및 목적을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는데, 친권남용의 이유로 자녀학대 및 방임행위에 따른 친권상실을 선고하기 위해서 는 자녀를 학대하거나 방임하는 행위가 친권행사의 범주에 포함돼야 한다.

 

그러나 학대 및 방임 행위는 본래의 친권행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므로 자녀에 대한 학대 및 방임을 친권남용으로 간주하여 친권상실의 근거로 삼는 것은 부족하다는 의견이다. 또 ‘친권행사가 곤란하거나 부적당한 사유란 친권자의 소재불명, 장기간의 의식불명, 중병, 정신질환 등에 따른 의사능력부족’ 등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사유는 학대로 인한 중상해, 그리고 상습적 학대에 대한 친권 일부 제한 선고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김 교수는 개정 민법이 제924조에서 부모의 ‘현저한 비행’, ‘기타 친권을 행사시킬 수 없는 중대한 사유’를 삭제해 친권상실을 선고할 수 있는 원인을 축소시켰다고 비판하고 있다.

 

 

촘촘한 미국 부모 친권 종결 사유
 

미국에서는 2020년 기준 모든 주와 콜롬비아 특별구(District of Columbia)에서 자녀에 대한 부모의 권리, 예컨대 돌봄(care), 양육(custody), 그리고 통제(control of her children)권이 ‘자녀의 최상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비자발적으로 종결(involuntary termination)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가 자신의 자녀에 대한 부모의 권리를 종결시키기 위해서는 특수한 상황이 전제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 특수한 상황은 부모에 의한 상해의 위험으로 아동의 안전을 확신할 수 없을 때, 아동의 기본적 필요(basic need)를 부모가 충족시킬 수 없을 때다.


미국은 각주에 따라 부모권리의 종결에 대한 법률 규정이 다소 차이는 있지만, 아동학대는 친권 종결의 가장 중대한 사유 중 하나로 전 지역에서 유기와 함께 심각한 신체적 상처를 친권종결의 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30개 이상의 주에서는 방임과 만성적 학대를 친권종결의 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심각하고 만성적인 학대와 방임’ 뿐 아니라 ‘가정 내에서 다른 아동(형제)에 대한 학대와 방임’, ‘다른 자녀에 대한 친권 종결’도 요건이 된다. 콜로라도주는 친권종결을 선고하는 데 있어서 교육 등을 통해 “부모를 갱생시키고자했으나 그럴 수 없었던 아동보호기관의 합리적 노력”, “지속적 학대 및 방임과 관련해서 복지부와 연루됐던 점”을 참고하도록 하고 있다. 델라웨어주는 아동이 설명할 수 없는 심각한 신체적 상해로 인해 고통받고 있고, 그러한 상해가 부모의 악의적이고 의도적인 행위로부터 초래된 것일 때 부모의 권리를 박탈하고 있다. 아이다호주는 부모에 의한 학대와 방임에 대해 친권종결을 선고하는 것이 아동의 최상의 이익이라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친권 종결을 법원에 청구할 수 있는 자격도 우리나라보다 훨씬 폭넓게 부여돼 있다. 텍사스주의 경우 법원에 친권 종결을 청구할 수 있는 자, 또는 기관은 일방의 부모, 후견인, 부모는 아니지만, 법원 명령에 의해 아동에 대한 면접권이 있는 자, 위탁부모, 양부모, 친족, 최소 6개월 이상 아동을 실제로 돌보고 있는 자, 가정보호국, 아동복지기관 등이 해당한다.

 

 

“친권 제재 실효성 제고 방안 마련해야”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아동학대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법적·사회적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며 “그중에서도 아동학대 가해자의 77%가 부모인 현실에서 학대 부모의 친권제재와 관련된 조치 마련은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라고 강조한다.

 

이어 “자녀에게 중상해를 입히고 계속되는 위험이 예견되는데도 피해아동을 다시 부모에게 되돌려보내는 현실적 무력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친권 제재의 실효성을 제고하는 방안을 강구해야만 한다”라고 덧붙였다.

 

허 조사관은 우선 현재 친권 제한 등 관련 규정의 모호성을 개선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허 조사관은 “미국의 사례처럼 친권정지, 제한, 상실 등의 선고 시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구체적인 기준과 범위 규정을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수 있다”라고 했다.

 

또 “친권 제재를 법원에 청구할 수 있는 청구권자의 범위가 확대돼야 한다”며 “검사의 청구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미국 사례와 같이 일방의 부모, 후견인, 실제 학대 피해 아동을 돌보고 있는 자, 또는 관련 기관 등에 친권 제재 청구권을 부여하는 규정의 마련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허 조사관은 “친권 제재 조치 이후 아동이 안전하게 보호받고 성장할 수 있는 국가시스템이 완벽하게 마련돼야 한다”라며 “피해아동을 부모와 분리할 경우 돌봄을 받을 곳이 마땅치 않다는 이유가 학대 부모에 대한 친권 제재 관련 선고를 망설이거나 주저하게 해서는 안 된다”라고도 했다.

 

허 조사관은 “아동이 가장 취약한 사회구성원인 이유는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필요한 모든 정보의 수집, 분별력을 지니고 중요한 결정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은 부모의 보호와 책임이 강조되고 있는 이유”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사생활권, 민법이 폭넓게 보장하고 있는 부모의 권리, 헌법이 침묵하고 있는 아동의 권리 사이에서 ‘학대로부터 아동을 보호할 복지국가의 임무’와 ‘부모의 자율성에 대한 국가의 과도한 개입’은 충돌한다”라며 “‘국민의 자녀’로만 매우 제한적으로 언급되고 있는 헌법에 아동 권익을 구체적으로 명시할 필요가 있다. 아동의 헌법적 지위를 보장함으로써 개별 입법이 헌법적 가치를 실현하도록 하는 일을 우리 사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본 기사는 MeCONOMY magazine September 2020에 실린 내용입니다.